2022. 3. 9. 23:39

“ 기도의 능력 - (3) ” (경 건)

(경 건) [20050703] ● 기도의 능력 ● ③ 생명을 죽이는 설교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생명을 죽이는 설교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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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을 겪는 동안, 나는 건강을 누릴 때 그랬던 것보다 더 영원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나의 삶을 진단해 보았다. 이 진단에서 내가 사람으로서, 크리스천 목회자로서, 또 교회의 직원으로서 동료들에게 해야 할 의무의 이행에 대해 나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는 만족할 만 했다. 그러나 나의 구주이며 주님이신 그분과 연관해 생각해 볼 때는 그 결과가 전혀 달랐다. 주님께 대한 나의 감사와 사랑의 순종은 유년부터 노년까지 삶의 변천 동안 나를 구속하시고, 지키시고, 도와주신 데 대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그토록 많은 것을 베푸신 그분께 대한 나의 사랑이 냉랭하다는 사실이 나를 억누르고 당혹케 했다. 나는 나의 무가치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나의 특권과 의무에 맞게 주어진 은혜를 향상시키는 일에 소홀했다. 또 번잡한 염려와 노력을 많이 기울였음에도, 나는 첫사랑의 열심으로부터 멀어져 향상의 부족은 더 심해졌다. 나는 혼란에 빠졌고, 겸손히 자비를 구했고,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힘쓰며 나의 언약을 새롭게 했다.

─ 주교 맥켄드리 ─

  생명을 죽이는 설교는 정통적일 수 있는데, 흔히 그렇듯이 교리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정통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통을 사랑합니다. 정통은 선한 것입니다. 정통은 최선입니다. 정통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끗하고 명쾌한 가르침이며, 오류와의 싸움에서 진리에 의해 얻어진 트로피입니다. 또 정통은 명백하고 분별없는 불신이나 미신의 파괴적인 홍수에 대항해 쌓아올린 믿음의 제방입니다. 그러나 정통은 크리스탈처럼 깨끗하고 단단하며, 오류에 민감하고 전투적일 수는 있지만, 그럴듯한 모양과 그럴듯한 이름과 그럴듯한 지식을 갖춘 법문 ─ 생명을 죽이는 법문 ─ 에 불과할 수가 있습니다. 죽은 정통처럼 생명력 없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너무 죽어 있어서 사고할 수도 없으며, 너무 죽어 있어서 생각할 수도 없고, 연구하거나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설교도 성경의 원리들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를 지니고 있을 수 있으며, 학적이며 비평적인 스타일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문자의 어원과 문법에 대해 세세히 설명할 수도 있고, 그 문자를 완벽한 형태로 보기 좋게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플라톤이나 키케로의 글들을 설명하듯이 그것을 잘 설명할 수도 있고, 변호사가 소송에서 변론하기 위해서나 소송 사건 적요서를 작성하기 위해 법조문을 연구하듯이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죽이는 설교는 서리, 곧 얼어 죽게 하는 서리와도 같습니다. 법문 설교는 시와 수사법에 의해 설득력 있고 번드르한 모습을 지닐 수도 있으며, 기도가 곁들여지고, 감동이 가미되고, 뛰어난 설명이 덧붙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훌륭하거나 고상하고, 비싼 장식을 곁들였고, 희귀하고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시체를 장식하는 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죽이는 설교는 학적이지 않으며, 신선한 생각이나 느낌을 보이지도 않고, 무의미한 일반론이나 김빠진 세부 사항들로 치장하고, 불규칙하고 꾀죄죄한 스타일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골방의 기도는 물론 연구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생각이나 표현, 혹은 기도로 다듬은 흔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설교로 인한 황폐함이 얼마나 폭넓고 철저합니까! 영적인 죽음이 얼마나 심합니까!

  이 법문 설교는 어떤 사실의 껍데기와 그림자만을 다룰 뿐 그 사실 자체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영역까지 파고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추어진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확고한 이해가 전혀 없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진리이지만, 그 외면은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부서지고 깨뜨려져야 할 껍데기입니다. 법문은 아주 매력적인 옷을 입고 최신 유행을 따를 수도 있지만, 그 매력이 하나님을 향한 것도 아닐 뿐더러 그 유행 역시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실패의 원인은 설교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빚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하나님의 손에 내맡겨진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설교와 그 구상, 마무리, 그리고 흡인력과 감동적인 힘에 신경 쓰기에는 바빴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결코 구하지도 않았고, 연구하지도 않았으며, 탐색하거나 경험해 본 바가 없습니다. 그는 결코 “높은 하늘 보좌”(the throne high and lifted up) 앞에 서 본 적이 없으며, 스랍들의 노래도 들어본 적도 없고, 환상을 보거나 그 경외스러운 거룩의 물결을 느껴 본 적도 없습니다. 또한 그는 연약함과 죄책감으로 인한 전적인 자기 포기와 절망에 빠져 부르짖어 본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제단의 살아 있는 불에 의해 그의 삶이 새로워지거나, 그 불이 그의 가슴에 닿아 정결케 되고 불타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그에게로, 혹은 교회로, 그리고 형식과 의식에로 나아올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의 진정한 이끌림과 달콤하고 거룩한 하늘의 교통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신선함을 지니지만 영적 감화가 없고, 재미있지만 거룩하게 변화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은 억압을 받습니다. 여름철 대기에 냉기가 일고, 땅은 굳어져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도성이 죽은 자의 도성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진용을 가다듬은 군대가 아니라 무덤이 됩니다. 찬양과 기도가 질식당하고, 예배가 죽어버립니다. 설교자와 설교가 거룩을 돕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일을 돕고, 사람들을 하늘 위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보냅니다.

  생명을 죽이는 설교는 기도가 없는 설교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만들어 냅니다. 기도에 연약한 설교자는 생명을 주는 힘이 약합니다. 그의 분명하고도 전반적인 특징을 볼 때 기도에서 물러선 설교자는 설교가 지닌 독특한 생명력을 자기의 설교에서 잘라낸 사람입니다. 그가 직업적인 기도는 하겠지만, 그 직업적인 기도는 그 설교가 생명을 죽이는 일을 도울 뿐입니다. 직업적인 기도는 냉랭하며, 설교와 기도 모두를 죽입니다. 회중 기도에 있어서 느슨해진 헌신과 나태하고 불손한 태도들은 강단에서의 직업적인 기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길고, 산만하며, 메마르고, 텅 빈 기도가 여전히 많은 강단에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으심이나 마음의 감동이 없는 그 기도들은 예배의 모든 은혜들 위에 얼어 죽게 하는 서리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그 기도들은 죽음을 주는 기도들입니다. 그 숨결 아래 헌신의 모든 자취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들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옵니다. 짧은 기도, 살아 있는 기도,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 성령에 의한 기도 ─ 강단에서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열렬하고, 단순하며, 열정에 찬 기도 ─ 를 드리라는 요청은 올바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시듯이, 참된 경건과 참된 예배, 참된 설교를 위해서는 모든 신학교들보다도 설교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더 유익할 것입니다.

  잠깐! 멈추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습니까? 죽이는 설교?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 온 세상의 창조주, 모든 인류의 심판자이신 주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내면에 얼마나 큰 경외가, 단순함이, 그리고 성실함과 진리가 요구됩니까! 우리는 참으로 진실해야만 합니다! 참으로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상한 활동이며, 가장 숭고한 노력이고, 가장 참된 것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기도를 영원히 내어버리고 참된 것, 가장 능력 있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과 땅에 가장 강력한 힘을 불어넣고 궁핍하고 굶주린 자들에게 다함이 없고 열려 있는 하나님의 보화를 전해주는 넘치는 기도, “생명을 창조하는 설교”(life-creating preaching)를 하지 않겠습니까?

E.M. 바운즈 /『 기도의 능력ː(제3장) 』...

┃ E.M. 바운즈 /『 기도의 능력ː(제3장) 』... ┃

[0746]

Chapter 3ːTHE LETTER KILLETH

During this affliction I was brought to examine my life in relation to eternity closer than I had done when in the enjoyment of health. In this examination relative to the discharge of my duties toward my fellow creatures as a man, a Christian minister, and an officer of the Church, I stood approved by my own conscience; but in relation to my Redeemer and Saviour the result was different. My returns of gratitude and loving obedience bear no proportion to my obligations for redeeming, preserving, and supporting me through the vicissitudes of life from infancy to old age. The coldness of my love to Him who first loved me and has done so much for me overwhelmed and confused me; and to complete my unworthy character, I had not only neglected to improve the grace given to the extent of my duty and privilege, but for want of improvement had, while abounding in perplexing care and labor, declined from first zeal and love. I was confounded, humbled myself, implored mercy, and renewed my covenant to strive and devote myself unreservedly to the Lord.

─ Bishop McKendree ─

  THE preaching that kills may be, and often is, orthodox ─ dogmatically, inviolably orthodox. We love orthodoxy. It is good. It is the best. It is the clean, clear ─ cut teaching of God's Word, the trophies won by truth in its conflict with error, the levees which faith has raised against the desolating floods of honest or reckless misbelief or unbelief; but orthodoxy, clear and hard as crystal, suspicious and militant, may be but the letter well-shaped, well-named, and well-learned, the letter which kills. Nothing is so dead as a dead orthodoxy, too dead to speculate, too dead to think, to study, or to pray.

  The preaching that kills may have insight and grasp of principles, may be scholarly and critical in taste, may have every minutia of the derivation and grammar of the letter, may be able to trim the letter into its perfect pattern, and illume it as Plato and Cicero may be illumined, may study it as a lawyer studies his text-books to form his brief or to defend his case, and yet be like a frost, a killing frost. Letter-preaching may be eloquent, enameled with poetry and rhetoric, sprinkled with prayer spiced with sensation, illumined by genius and yet these be but the massive or chaste, costly mountings, the rare and beautiful flowers which coffin the corpse. The preaching which kills may be without scholarship, unmarked by any freshness of thought or feeling, clothed in tasteless generalities or vapid specialties, with style irregular, slovenly, savoring neither of closet nor of study, graced neither by thought, expression, or prayer. Under such preaching how wide and utter the desolation! how profound the spiritual death!

  This letter-preaching deals with the surface and shadow of things, and not the things themselves. It does not penetrate the inner part. It has no deep insight into, no strong grasp of, the hidden life of God's Word. It is true to the outside, but the outside is the hull which must be broken and penetrated for the kernel. The letter may be dressed so as to attract and be fashionable, but the attraction is not toward God nor is the fashion for heaven. The failure is in the preacher. God has not made him. He has never been in the hands of God like clay in the hands of the potter. He has been busy about the sermon, its thought and finish, its drawing and impressive forces; but the deep things of God have never been sought, studied, fathomed, experienced by him. He has never stood before "the throne high and lifted up," never heard the seraphim song, never seen the vision nor felt the rush of that awful holiness, and cried out in utter abandon and despair under the sense of weakness and guilt, and had his life renewed, his heart touched, purged, inflamed by the live coal from God's altar. His ministry may draw people to him, to the Church, to the form and ceremony; but no true drawings to God, no sweet, holy, divine communion induced. The Church has been frescoed but not edified, pleased but not sanctified. Life is suppressed; a chill is on the summer air; the soil is baked. The city of our God becomes the city of the dead; the Church a graveyard, not an embattled army. Praise and prayer are stifled; worship is dead. The preacher and the preaching have helped sin, not holiness; peopled hell, not heaven.

  Preaching which kills is prayerless preaching. Without prayer the preacher creates death, and not life. The preacher who is feeble in prayer is feeble in life-giving forces. The preacher who has retired prayer as a conspicuous and largely prevailing element in his own character has shorn his preaching of its distinctive life-giving power. Professional praying there is and will be, but professional praying helps the preaching to its deadly work. Professional praying chills and kills both preaching and praying. Much of the lax devotion and lazy, irreverent attitudes in congregational praying are attributable to professional praying in the pulpit. Long, discursive, dry, and inane are the prayers in many pulpits. Without unction or heart, they fall like a killing frost on all the graces of worship. Death-dealing prayers they are. Every vestige of devotion has perished under their breath. The deader they are the longer they grow. A plea for short praying, live praying, real heart praying, praying by the Holy Spirit ─ direct, specific, ardent, simple, unctuous in the pulpit ─ is in order. A school to teach preachers how to pray, as God counts praying, would be more beneficial to true piety, true worship, and true preaching than all theological schools.

  Stop! Pause! Consider! Where are we? What are we doing? Preaching to kill? Praying to kill? Praying to God! the great God, the Maker of all worlds, the Judge of all men! What reverence! what simplicity! what sincerity! what truth in the inward parts is demanded! How real we must be! How hearty! Prayer to God the noblest exercise, the loftiest effort of man, the most real thing! Shall we not discard forever accursed preaching that kills and prayer that kills, and do the real thing, the mightiest thing ─ prayerful praying, life-creating preaching, bring the mightiest force to bear on heaven and earth and draw on God's exhaustless and open treasure for the need and beggary of man?

E.M. Bounds/『 Power Through Prayer 』...

   Power Through Prayer
      by
      E. M. Bounds

3ː생명을 죽이는 설교

Chapter 3ːTHE LETTER KILLETH

주 날개 밑 즐겁도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밤이 어둡고 큰 바람 부나∼♪

아버지께서 날 지킬 줄 아니 겁내지 않고 잘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그 안에 쉬기를 원하노라

이 세상 내 슬픔 위로 못하나 주님이 안위와 복 주시네

3. 주 날개 밑 귀한 희락이 있네 생전에 걱정 다 지나도록

거기서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예수께 쉬어 든든합니다

【 후 렴 】

주 날개 밑 즐겁도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토록 거하겠∼네∼♩∼♪♬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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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