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8. 2. 00:45

『 조직신학 V』ː(제9장 - 구제의 은혜)

 

 

  조직신학          『 조직신학 V』ː(제9장 - 구제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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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주는 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따라서 너희가 매사에 넘친 것같이 믿음과 언어와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 은혜에서와 같이 넘치기를 바라노라』(고린도후서 8:7). 이 특별한 은혜는 (문맥을 살펴볼 때)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주는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은 전생애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주는 때로 정합니다. 상업화로 인해 크리스마스가 상점들과 광고로 거의 망쳐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며 주는 대신 선물을 받는 분위기로 되어 버렸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주는 것으로 특징 지워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라는 선물을 이 세상에 주셨고, 그는 후에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경축하고 기념하는 데에 있어 우리는 주는 것이 좋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는 것으로 점철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은 그의 돈을 너그러이 주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9:7). 십일조 이상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조금 거두지만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풍성하게 거두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9:6). 아브라함이 율법이 있기 전에 은혜 아래서 십일조를 드렸다면 확실히 그리스도인은 율법 이후의 은혜 아래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십일조 이상을 드려야 하며 돈 뿐만 아니라 시간, 재능, 가족을 드려야 하며, 이런 것들 뿐만 아니라 원수를 용서해 주어야 하고, 자신을 비방하며 학대하는 사람들마저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악을 선으로 갚으면서(베드로전서 3:9)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전체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죄인에게 주는 것,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주는 것.

  윌리엄 부스(
William Booth) 장군이 구세군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전보를 보내도록 요청받았을 때(그때 당시 구세군은 구령에 전념하고 있던 성경을 믿는 단체였습니다.) 그는 전보에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을 써 보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와 어른의 다른 점은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반면 어른은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의 주머니에 돈을 꺼낼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부양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배를 채우는 독재 정부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대해 말할 때 저는 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전국교육자협회(NEA), 유네스코(UNESCO) 같은 조직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 개인이 한 개인을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 즉 개인들을 위한 진짜 관심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집단화된 사회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미국의 자유를 없애버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억압받는 소수와 생태학적 문제에 관심있는 체 합니다. 하원의 90%가 그들이 비록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념적으로는 현재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로 가장된 채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철학입니다. 누가 누구를 속이려는 것입니까? 작은 누룩이 전체 덩어리에 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해 딱지를 붙이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진화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믿고 삶의 모든 영역을 정부가 통제하는 데에 찬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것을 사회주의, 파시즘, 카톨릭시즘(카톨릭 교회조직) 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부르든지 간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조직입니다. 비록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날지라도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재산을 빼앗고, 가족을 괴롭히고, 성경을 덮고, 지독한 세금을 부과하는 조직은 모두가 같은 조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온 현자들의 행동을 연구해 봄으로써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2장). 여기서 우리는 주는 은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구하다ː그들은 하늘에서 별을 보고 가정을 버리고 그 별을 쫓았습니다(마태복음 2:2).
  2. 찾다ː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그 아이가 있는 곳을 헤롯에게 묻기 위해 시간을 냈습니다(마태복음 2:9).
  3. 경배드리다ː그들은 그 아기가 2살 쯤 되었을 때 구세주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드렸습니다(마태복음 2:1). 경배의 일부로써 그들은 선물을 드렸습니다.
  이는 구하고 찾고 경배하고 그리고 주는 죄인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는 죄인들에게 적절한 순서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를 구해야 합니다.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그를 찾으면 그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경배는 그 구원자에게 기꺼이 드림으로써 분명해 집니다.
  현자들이 준 선물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유향은 제사장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몰약은 선지자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황금은 지상에서 가장 빼어나기 때문에 드려졌습니다. 그러므로 황금은 만왕의 왕에게 드리기에 적합합니다. 유향은 제사장이 드리는 기도의 한 형태입니다(요한계시록 8:3-4/누가복음 1:10). 그들은 제사장 중의 제사장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인지했습니다. 몰약은 방부처리를 위해 사용되는 쓴 풀이었습니다. 구세주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선물이 고통받는 구세주에게 드려졌습니다. 마가복음 15:23에 포도주가 섞인 몰약이 십자가 위에 있는 그에게 제공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께 쓴 것과 왕의 것과 종교적인 것이 드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미국에서는 모든 주요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주께 드려야 할 첫 번째 항목이 조심스럽게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몸"입니다. 성별과 성화를 우리에게서 없애 버리기 위해 미국에 있는 모든 주요한 복음주의자들과 설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우리 삶에 모셔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몸을 소유하고 있으면 우리의 삶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의 삶을 갖지 못할 때는 우리의 몸을 지배하지 못할 때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여러분 삶에 들어오도록 하기", "그리스도와 삶을 공유하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몸 안에 계셔서 우리 몸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몸과 삶은 우리 자신의 삶이거나 혹은 악한 영의 삶이 됩니다. 우리의 지혜를 하나님의 성령이 다스리지 않는다면 사탄이 다스리든지 우리가 다스리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최우선적인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 마케도니아인들은 처음에 그들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고린도후서 8:5). 주께서는 악한 영의 삶 속에는 계시지만 악한 영의 몸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섭리적인 창조주로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삶과 죽음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지상의 모든 생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지배세력으로 사탄의 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은 말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아무런 손해를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삶의 한두 영역에 그리스도를 모셨다고 해서 그런 그리스도인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창조되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그 사람 몸 안에 내주하신 후에야 구원받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각 지체들, 즉 팔, 다리, 눈, 코, 귀, 목구멍, 입, 혀, 입술, 이, 턱을 가져다가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때까지는 그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의 전체 주제입니다. 반드시 읽어보십시오! 이것이 로마서 12:1-4의 주제입니다. 읽어보십시오! 몸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어떤 것도 합당하게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원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마귀적인 은사주의자들을 강하게 책망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동침하면서 은사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6:19). 은사를 자랑하면서도 그들의 몸이 성전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의 침례"에 관해 말합니다. 새번역본들 말고는 어디에도 그런 소리는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즉 헬라어 전치사 "en" 은 장소와 관계된 경우가 아니면 "in"(안에서)이라고 결코 번역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는 것은 "안에서"(in)가 아닌 "의해서"(by)입니다(고린도전서 12:13). 그런 무리는 심지어 그들의 몸이 성령의 전인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몸은 술취함(고린도전서 11:21), 긴 머리(고린도전서 11:14), 간음(고린도전서 5:1)에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에 들어오게는 했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의 몸을 갖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은사주의자 무리에게『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20)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립니다. 만약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일들에 드립니다. 젊은 설교자는 이런 것들을 묵상하면서 그 일에 전념하여야 합니다(디모데전서 4:15). 그가 자신을 온전히 드리라고 들었던 것은 주고 사랑하며 형제들과 화평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기도에 온전히 드리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전적으로 드려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 닥치면 놀랍게도 성경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믿을 만한 번역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디모데가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묵상하라고 들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도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오직 너는 행실사랑믿음순결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읽는 것권고하는 것교리에 전념하라...네 안에 있는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디모데전서 4:12-14). 그는 읽는 것과 가르침에 전념하라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읽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바울은『내가 갈 때까지 읽는 것권고하는 것교리에 전념하라』(디모데전서 4:13)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리라』(사도행전 6:4). 어떤 사람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의 삶은 두 가지 일 즉, 기도와 말씀이 사역을 위해 예약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담사역자의 할 일이고 본문은 사도들의 직무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 밖에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give thanks).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
  우리는 주님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마케도니아인들은 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하게 주께 드렸고 바울은 교제의 일환으로써 그 선물을 받아들였습니다(고린도후서 8:1-4).
  어떻게 주님께 드려야 할까요? 체계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고린도전서 16:2). 크리스마스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주 드렸습니다. 드리는 일은 사업처럼 하십시오. 주의해서 회계하십시오. 그 매주 첫날에 한 주도 빠지지 말고 매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저축하여 두십시오. 개인적으로 하십시오.
『너희 각자가...따로 저축하여 두어서...』(고린도전서 16:2). 가정의 가장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들이 다 개인적으로 하십시오. 부자들만이 주는 은혜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도 또한 줍니다. 유일한 차이는 선물의 규모와 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고린도전서 16:2). 얼마만큼 하는가는 성령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계산문제를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있기 오래 전에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있기 전에 십일조를 냈습니다. 야곱은 율법 전에 십일조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비율은 10분의 1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구약에서는 소득의 10분의 1인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과 야곱은 은혜 아래서 소득의 10분의 1인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였고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강제로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우리는 율법 아래 있었던 사람보다 더 많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러분이 십일조 이상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속해서 영적으로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G. 레튜어노(
Le Tourneau)는 10%를 드렸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번성케 하심에 따라 20%를 드렸고 지금은 50% 이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드리는 자에게 풍성하게 주십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이 문제에서 매일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드리는 은혜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을 증명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이 나라 여기저기에서 설교자들의 가장 유명한 상투어 중의 하나는 "누구도 하나님보다 많이 줄 수 없다"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여러분도 믿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믿는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시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은『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많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여러분이 더 많이 드릴 수 있게 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해 보았습니까?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두 달 동안 10%를 드리고 다음 두 달은 15%, 그 다음 두 달은 20%를, 그 다음 두 달은 25%, 그런 다음 여러분의 소득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주의해서 보십시오. "배짱"이 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꺼이 드려야 합니다. 비율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드릴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는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라』(고린도후서 9:7). "또 다시 헌금 시간이로군. 뭔가 내야 하나, 아니면 그만두나?" 이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에게 그렇게 많이 주신 분께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과 기쁨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하다면 그것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 얻었습니까? 정부가 준 것입니까? 여러분이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누가 여러분에게 준 것입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구원받았다면 누가 그들을 구원했습니까? 자,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어떻게 인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기꺼이 즐겁게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원망으로가 아닌 기쁘게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즐겁게 드리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주신대로 드리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적으로 드리십시오. 고린도후서 8:28에서 고린도인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연보를 드렸습니다. 과부는 자신의 생계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드렸는냐가 아니라 남겨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선물의 가치를 평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의 규모보다는 오히려 주는 자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기쁘고 즐겁게 드리고 자주 드리도록 합시다.

  저의 개인적인 간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받기 전부터 저는 십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 일원으로서 미사에 참석하고 성호를 긋고 이마에 재를 뿌리고 야자수(종려) 잎으로 집을 장식하면서 십일조를 구원의 일부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몇 달 전부터 십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후 저는 자유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고 십일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다 떨어지고 돈이 바닥 났습니다.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현관 계단에 식료품 가방을 두고 갈 때까지 삼일 간을 먹을 것 하나 없이 지냈습니다. 한 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돈을 주실 때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항상 십일조를 해왔고 십일조 이상을 드렸습니다. 고백컨대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바입니다. "기꺼이 주님께"드리고 모든 영광과 신뢰를 하나님께 절대적이며 완전하게 드려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모든 청구서는 지불되어 왔고 학교는 재정적으로 흑자이며 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도 재정적으로 흑자이며 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청구서는 다 제 날짜에 지불되고 은행에는 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사탄에게 넘겨줘서 발가벗겨 파산시켜 버리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그분께 빚지고 있습니까?
  저는 최상의 좋은 것으로 드리는 사람들이 대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기 학교에서(1년 동안) 제게 가장 놀라운 일들 중의 한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저를 위해 필요한 물품이 갖춰진 가방과 독일 휴가를 위한 왕복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저는 35년 동안 휴가를 갖지 못했었습니다. 왜 제가 그리 놀랐는지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선물은 어린 학생들이 제게 준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몇은 좋은 음식을 살 여유가 없어서 7개월 간을 땅콩 버터를 먹었습니다. 그 선물은 차가 고장났지만 고칠 수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만 했던 학생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시간당 2달러 6센트를 벌어 서너명의 아이들을 부양해야 할 학생들로부터 그 선물을 받았으니 그 선물이 제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중고 트럭을 사려고 했는데, 600달러가 필요했습니다. 북서 플로리다에서 가장 부유한 그리스도인들 중의 하나인 구원받은 성경 교사에게 연락을 취해서 6%나 8%대신 2% 정도의 낮은 이자로 600달러를 대부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결코 대부를 해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특별한 그리스도인은 5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데에 20년 동안을 저의 책과 테이프를 사용해 왔던 그 부유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600달러를 얻으려고 애쓰는 동안 전화회사에서 일하는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주머니에서 그 돈을 제게 주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물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축복은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축복이 물질적인 풍족함이기는 하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성실하게 십일조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주께서는 확실히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이는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희생제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빌립보서 4:18)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마태복음 6:20)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십시오. 그리스도인 고아들과 과부들에게 주십시오.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교회 봉사에 필요한 것을 드리십시오. 땅끝까지 복음 전파를 위해 드리십시오. 갈 수 없다면 주십시오. 줄 수 없다면 기도하십시오. 드릴만한 뭔가가 없다면 하나님께 드릴만한 뭔가를 달라고 기도하고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면 기꺼이 즐겁게 되돌려 드리도록 하십시오.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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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S.럭크만 /『 조직신학 V』ː(제9장 - 구제의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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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logical Studies V
by
Peter S. Ruckman, Ph.D.


Copyright (C) 1989 by Peter S. Ruckman,
Bible Baptist Bookstore
Pensacola, Florida
1996/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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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ː구제의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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