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9. 23:08

“ 소모될 수 없는 사랑 ” (묵 상)

● 소모될 수 없는 사랑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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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s)

31핵심을 찌르는 질문

『 세 번째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라. 주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니
베드로가 상심하더라. 그리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먹이라.”고 하시니라. 』
(요한복음 21:17

@  지금 베드로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합니다(마태복음 263335). 자연적 개별성(타고난 개인의 특이성)으로는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인격성(인간의 근본적 속성)의 사랑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뼈아픈 질문에 의해 발견됩니다. 베드로는 일반인들이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는 차원에서 주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기질적인 사랑으로써 개별성까지 깊게 닿을 수는 있지만 ‘인격의 중심부’까지는 닿지 못합니다. 참된 사랑은 결코 큰소리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마태복음 1032┃누가복음 128)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말로만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모든 행위로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간교함에 대해 아파한 적이 없다면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가 주는 그 어떤 아픔보다 우리를 더 아프게 합니다. 오히려 죄는 감각을 무디게 하기 때문에 점점 아픔이 줄어듭니다. 주님의 질문은 우리의 감정을 더욱 예민하게 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양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인격적 차원까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 말씀은 심지어 혼과 영을 찔러 가르기까지 하므로(히브리서
412) 거짓이란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질문을 감상적으로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때는 그 아픔이 너무나 커서 당신은 멋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고통을 당합니다. 주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고통이 임하는 것은 결코 실수나 우연일 수 없습니다. 아픔의 그 순간이 사실은 위대한 계시의 순간입니다.

(마태복음 26:3335)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설령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니 3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시더라. 35 베드로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설령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니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더라. 』
(요한일서 4:15, 16┃베드로후서 1:10, 11┃유다서 1:24, 25)15 누구든지 예수하나님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그 사랑을 우리가 알고 또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오히려 더욱 힘써서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러한 것들을 하면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요 11 이같이 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는 입구가 너희에게 풍성하게 마련될 것이니라. 24 이제 능히 너희를 실족하지 않게 지키시고 자기의 영광의 임재 앞에 흠 없이 큰 기쁨으로 서게 하실 수 있는 그분, 25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구주께 영광과 위엄과 다스림과 권세가 지금과 또한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269) 내 주여 뜻대로 (c)

32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세 번째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라. 주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니
베드로가 상심하더라. 그리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먹이라.”고 하시니라. 』
(요한복음 21:17

@  당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마귀도 결코 그곳까지는 아픔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죄나 사람 사이의 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곳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니 베드로가 상심하더라”(요한복음 2117). 베드로는 이때 비로소 내면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자신이 주 예수님께 헌신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인내하며 반복해 물으시는 질문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실오라기 만한 거짓도 남아 있지 않았고 다시는 자신에게 속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말하거나 감상이나 과장을 드러낼 여유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깨달았던 놀라운 계시의 순간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7). 그는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것 보세요, 저것 보세요”라고 떠들썩하며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스스로 깊이 발견한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저 하늘에나 깊은 땅 속에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통찰하시는 뼈아픈 질문을 받기까지, 그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질문만이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를 참으로 알게 해 줍니다.
  베드로를 다루시는 주 예수님의 끈기와 직선적인 태도와 기술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적절한 때가 오기 전까지 절대로 이 질문을 하지 않으십니다. 거의 드물게, 아마도 한 번, 주님께서는 우리를 피할 수 없는 곳에 데리고 가셔서 꿰뚫는 직선적인 질문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떠한 고백보다 훨씬 더 깊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167)『 내 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으며 내가 그것들을 심히 사랑하나이다. 』
(솔로몬의 노래 1:4)『 나를 이끌어 주소서. 우리가 당신을 따라 달려가리이다. 왕이 나를 그의 방들로 이끌어 들이셨으니 우리가 당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포도주보다 더 기억하리이다. 정직한 자들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

(271) 예수 나를 오라 하네

33소모될 수 없는 사랑

『 세 번째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니라. 주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니
베드로가 상심하더라. 그리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먹이라.”고 하시니라. 』
(요한복음 21:17

@  “내 양을 먹이는 것”은 사랑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랑은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자체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고 주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우리 혼이 하나님과 연합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최종 목표는 주 예수님처럼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어떠한 하나됨을 누리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도록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주님을 보내실 만큼의 하나됨이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b).
  지금 베드로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뼈아픈 질문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다 소모하거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를 고백하지 말고, 얼마나 많은 놀라운 계시를 받았는지도 말하지 말고, 그저 ‘내 양들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 중에서는 지독하게 웃긴 양도 있고, 질기도록 말 안 듣는 양도 있고, 더러운 양, 이상한 양, 대항하며 들이받는 양, 그리고 다른 길로 헤매는 양들이 있는데, 이들을 다 사랑하며 자신을 다 소모하기까지 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소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내 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넘쳐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을 소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각 개인의 자연적인 독자성(개별성)이나 특이성에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나는 더 이상 자연적인 기질에 이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양을 먹여야 합니다. 누구도 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안심할 수 없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자연적인 특성에 호감을 갖는 그러한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속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러한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으로 끝마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718)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라. 8 내 앞에 온 자는 다 도둑들이요 강도들이라. 양들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나는 그 문이라.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받을 것이며 또 들어가며 나오며 초장을 찾으리라. 10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들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 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을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13 삯꾼이 도망치는 것은 그가 삯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니라.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나니,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 16 또 나에게 이 양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 그들도 나의 음성을 듣게 되리라. 그리하여 한 양떼에 한 목자만 있으리라. 17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 18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없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고 하시더라. 』

(누가복음 5:10b15:10)10 ...그때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들을 낚게 될 것이라.”고 하시니라. 1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의 면전에 기쁨이 있느니라.”고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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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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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Utmost for His Highest
by
Oswald Cha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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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주 날개 밑 즐겁도다 (337) 주 날개 밑 즐겁도다 (c)
(337) 주 날개 밑 즐겁도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밤이 어둡고 큰 바람 부나∼♪
      아버지께서 날 지킬 줄 아니 겁내지 않고 잘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그 안에 쉬기를 원하노라
      이 세상 내 슬픔 위로 못하나 주님이 안위와 복 주시네

3. 주 날개 밑 귀한 희락이 있네 생전에 걱정 다 지나도록
      거기서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예수께 쉬어 든든합니다

      【후 렴】
      주 날개 밑 즐겁도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토록 거하겠∼네∼♩∼♪♬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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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설교 듣기 】

   2010. 1. 10〔오전

정상과 비정상 〔 이 송오 목사

100110_am.wmv4812

 

mms://211.200.28.142/bbc/20100110am.wma

  (창세기 22:114
1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더라.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하시더라. 3 ○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와 함께 있는 청년들 중 두 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갔더라. 4 삼 일째 되던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있는 그곳을 보고 5 아브라함이 그의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머물라.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경배드리고, 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하고 6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들어서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그는 자기 손에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7 이삭이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여.”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하니, 그가 말하기를 “불과 나무를 보소서. 그런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하자, 8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9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그곳에 와서,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묶어서 제단의 나무 위에 올려 놓고 10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11 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더라. 12 그가 말하기를 “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하더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더니, 보라,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그 뒤에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숫양을 잡아와서 그의 아들 대신에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더니, 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 “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하더라.

 

   2010. 1. 10〔오후

하나님의 약속은 예가 되기에 〔 이 송오 목사

100110_pm.wmv010207

 

mms://211.200.28.142/bbc/20100110pm.wma

  (고린도후서 1:1724
17 그러므로 이 일을 계획함에 있어서 정녕 내가 경솔히 행하였겠느냐? 아니면 내가 계획을 세울 때에 육신을 따라 세웠겠느냐? 그리하여 ‘예’, ‘예’나 ‘아니오’, ‘아니오’하는 일이 내게 있어야 하겠느냐? 18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되신 것같이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도 ‘예’와 ‘아니오’가 아니었노라. 19 우리, 즉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서 전파한 하나님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와 ‘아니오’가 아니라 그분 안에는 ‘예’만 있었느니라. 20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가 되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아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노라. 21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하시고 우리에게 기름부으신 그분은 하나님이시니 22 그분은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보증을 주셨느니라. 23 뿐만 아니라 나는 내 혼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인을 삼나니 너희를 아끼려고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아니하였노라. 24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너희를 기쁘게 하기 위한 동역자라. 이는 너희가 믿음으로 서 있기 때문이라.

(39) 이 죄인 구하려 (39) 이 죄인 구하려 (c)
이 죄인 구하려∼♪∼♬

1. 주 예수 세상에 탄생하사 슬픔과 수치를 당하셨네∼♪
      놀랍다 주님의 크신 은혜 이 죄인 구하려
      이 죄인 구하려 (구하시네) 이 죄인 구하려 (구하시려)
      놀랍다 주님의 크신 은혜 이 죄인 구하려

2. 주 예수 십자가 달리시사 내 모든 죄값을 치루셨네
      놀랍다 주님의 크신 은혜 나 위해 죽었네
      나 위해 죽었네 (죽으셨네) 나 위해 죽었네 (죽으셨네)
      놀랍다 주님의 크신 은혜 나 위해 죽었네

3. 주 예수 성령을 보내주사 죽었던 내 영을 살리셨네
      이 죄인 긍휼히 여기시사 나를 부르셨네
      나를 부르셨네(부르셨네) 나를 부르셨네(부르셨네)
      이 죄인 긍휼히 여기시사 나를 부르셨네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오사 주님의 약속을 이루시리
      나 친히 주님을 뵈오리라 나 위해 오시리
      나 위해 오시리(오시리라) 나 위해 오시리(오시리라)
      나 친히 주님을 뵈오리라 나 위해 오시리∼♩♬∼♪

(273) 나의 영원하신 기업

『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
(시편 107:43

『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세워주자. 』
(로마서 15:2

『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
(고린도전서 16:22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4:3a) 

┃BBC 찬양대┃(163) 주 다시 오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