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제임스성경의 신비들 ” (바른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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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여러분은
그림을 보듯이 그렇게 한 번에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약간의 성경
공부를 통해 우리의 성경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여러분
중 몇 분에게는 이것이 지겨울 수도 있겠으나 (만약 여러분이 ‘만나ㆍmanna’에는
관심이 없고 부추나 양파, 생강같은 것만 추구한다면 이 공부는 지겨울
것이고 그다지 재미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에게 이 시간은 축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 성경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없지만, 우선 (데살로니가전서
2:13)에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뉴욕의 한 거리에서, 모자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광신자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 광신자는 길거리 한 가운데서 모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질렀다고
합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
주위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모자 주위를 돌며 소리 지르기를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라고 외치자 군중들은 그에게 “무엇이 살아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모자를 들어
올려 모자 속에 있던 성경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으나, 만약 지금 여러분이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나이보다 더 미친 사람입니다. 인격화된 성경 이제 ‘갈라디아서 3:7∼8’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소위 말하는 “성경 경배자”로 나타나며, 바로 이 점이 대학 교수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헬라어 교수와 히브리어 교수들은, 학생들이 성경을 경배할까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생들에게 자기들을 경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최종권위로 놓는 대신에, 그들은 성경을 고치고 결국엔 학생들이 자기들을 최종 권위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위대한 그리스도인 바울은 무엇이라 말했는지 봅시다. 성경경배는 바울을 한 번도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7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으로 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라. 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라디아서 3:7∼8). 여기서 바울은 “성경이 미리 보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책은 미리 볼 수가 없습니다.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뭔가 살아있는 인격적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그때 성경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창세기를 읽어보십시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때에는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는 B.C. 1500년 경에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훨씬 전인 B.C. 1900년경에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8절)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대신에 “성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사실 이 점이 사람들을 늘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 당신은 책을 경배하는군요.”라고 말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성경 경배자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은 불태울 수 있지만 하나님을 불태우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요한복음 4:24)에서『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에 잉크를 가득 쏟아 이 책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책을 우상을 섬기듯 우상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경배한다는 이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일 것입니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당신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경은 ‘최초의 원본’을 지칭하는 것이군요.”라고 돌려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원본”이란 말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원본에서
말하기를, 원본에서 말하기를...”이라는 말들을 여러분은 성경 어디에서도 결코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 이제 ‘로마서
9:17’을 보겠습니다.『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여기서는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했을 때,
다시 말해서 출애굽기 앞 부분의 상황이 전개될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 이후에 출애굽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파라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파라오에게 말했습니까?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이 부주의했기에 “하나님” 대신에 “성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겠습니까?
바울은 ‘성경 경배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참다운 과학 교과서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책이 유행에 뒤지고 케케묵은 구식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이 책이 좀 현대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들은, 이 책은 과학적인 안목도 없고 귀납적 추리력도 없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31’을 보면『그 날 낮(day)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라고 “낮”(day)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4절을 보면『...그 밤(night)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말하여
“밤”(night)을 말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분은 물론 지구상에는 지역에 따라 하루에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경을 기록한 누가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동시에 낮과 밤이 생길 수
있습니다. 1500년대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500년대까지는 과학자들이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누가가 기록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누가는 어떻게
지구에 낮과 밤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1500년대까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들은 바로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전도서
1:6’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주려는 것이 오직
이 한 권의 책(《킹제임스성경》ㆍKing
James
Bible 1611)만을 사용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 어떤 “새로운” 역본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이 한
권의 책에만 밀착할 것입니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어(A.D. 1300),
죽은 시체를 치울 사람마저 충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유럽의 암흑기 때, 유대인들은 사상자가 거의 없이 그 시기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흑사병을 퍼뜨린 장본인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들의 식생활 규범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레위기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는데, ‘레위기 15:13’이
그것입니다. ‘욥기 37:6’을
보겠습니다. 욥기는 B.C. 1800년에
쓰여졌습니다. 욥기는 또한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며, 아마도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분이 눈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땅에
있으라.‘ 하시며 작은 비와 그의 힘을 보여주는 큰 비에게도 이같이 하시느니라』(욥기 37:6).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고 곧은 목으로 말하지 말라』(시편 75:5). 이 세상에 이 말씀이 좋은 충고라는 것을 모르는 음악 선생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시편 75:5’을 누가 말했는지 그는 곧은 목으로 말하면 여러분의 목청이 망쳐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노래할 때 그 소리는 횡경막을 통해서 나오는데, 그러려면 목이 느슨해야 합니다.『곧은 목으로 말하지 말라.』그러나 1800년에서 1900년 사이에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경만 읽었다면, 자기들의 목소리를 보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heart) 지방처럼 기름졌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편 119:70). 여러분은 심장(heart) 주위에 지방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았습니까? ‘창세기 42:28’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마음(hearts)이 내려 앉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내려 앉았다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시편에서 성경은, 이것을 위해서는 포도주를, 저것을 위해서는 기름을, 그러나 사람의 심장(마음)을 위해서는 “빵”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겨우 70년 전에야 밀가루 빵에 들어있는 비타민-E가 여러분의 심장 근육에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만 읽었다면 그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용사들의 방패가 붉게 되었고 용사들은 주홍색이 되었으며, 병거들은 그의 예비의 날에 불타는 횃불과 함께 있을 것이며 전나무들은 몹시 흔들릴 것이라』(나훔 2:3). 말씀 그대로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또는 그가 다시 오시려고 준비하시는 그 때에, 그의 예비의 날에, 병거들은 불타는 횃불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또 4절에 보면『병거들은 거리에서 사납게 달리며 넓은 길에서 이리저리 헤치며 가리라. 그들은 횃불같이 보일 것이요, 그들은 번개같이 달리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음... 글쎄, 병거라면...”이라고 둘러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포드 V-8이나, 머스탱(Mustang)이나, 또는 GM이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을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록하실 때는 아주 평범한 말로 그 어떤 바보도 다 이해할 수 있게끔 기록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렇지만 좀 현대적이며 과학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포드 승용차가 도요타 승용차를 꽝 부딪힐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1800년대에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나훔 2:3∼4)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동차로 과장해석했다고 생각한다면 이사야서를 보십시오. 나훔과 이사야서를 누가 썼든지 간에 그는 1900년대에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9:5)에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전쟁에 대해 말할 때『이는 용사의 모든 싸움이 혼란스런 소리와 피묻은 의복과 함께 있으나 이것은(이 전쟁은) 타는 것과 불의 연료(fuel of fire-!)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닐까요?” 자, 우리는 잠시 후에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볼 것입니다. (욥기 25:5)을
보십시오.『달을
쳐다보라. 그것이 빛나지 않으며(it shineth not)
정녕, 별들도 그분이 보시기에는 깨끗하지 못하거늘』그렇습니다. 달은 빛나지 않고 반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달이 빛나지 않고 단지 반사할 뿐이라는 사실을 A.D. 800년에도 몰랐습니다. 왜 사람들은
욥기를 읽지 않았을까요? 욥기는 B.C.
1800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 당시 사람들이 성경이 아닌 다른 것에 집착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전서
6:20)에서『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science falsely so called)』이라고 성경이 경고하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섹스와 돈과
교육”입니다. 언제든지
여러분이 섹스와 돈과 교육을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며, 그 후엔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육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교육 또한 비성경적입니다. 지금까지 어느 면으로 보나 기독교
고등교육은 비성경적 교육이었습니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나는 근본주의를 믿는다.”라고 말하겠지만, A.D. 325년의 니케아 공회에서도 기독교
고등교육을 받은 “근본주의자”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ㆍ1807∼1865)이 쓴《두 개의
바빌론ㆍThe
Two Babylons》을 읽어본다면 기독교 믿음의
소위 “근본주의적
모든 요소들”이
예수님 탄생 이전에 이교도에서도 가르쳐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이 거하는 길은 어디냐?(Where is the way where light
dwelleth?) 흑암이
있는 자리는 어느 곳이기에』(욥기
38:19). 왜
그는 사악한 NASV(새미국표준역본)처럼 “빛이 거하는 곳은 어느 장소냐”고 묻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아무도 빛이 있는 장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빛은 항상 움직입니다.
그래서 욥은『...길은
어디냐?』고 묻는
것입니다. 어떻게 욥은 빛이 항상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말씀들(Words)을 삭제하지 말라 이제 (요한계시록 22:19)을 보겠습니다.『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메세지에서도 아니고, 근본 요소에서도 아니고, 진리들에서도
아니며, 오직 “말씀들”에서 삭제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성경적 교리입니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나에 관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라. 47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의 글들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의 말들을 믿겠느냐?”고 하시니라.』(요한복음 5:46, 47). 자, 이제 여러분은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본 것처럼,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들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의
말씀들이 가치가 없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조차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책을 기록하시고 또한 그 책을 우리에게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무 약하셔서, 혹은 너무 피곤하시고 무기력하셔서 그 책을 보존할
능력이 없다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길거리 어딘가에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포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분이
영감으로 말씀을 기록하실 능력이 있다면, 마땅히 말씀을 보존하실 능력
또한 있으신 것입니다.
제가 즐겨 다니던 술집과 댄스파티에서 저를 끌어내시어 하늘의 도성으로
저를 불러주신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그 분께서 설교할『말씀』은
주지 않으셨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형제여,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제 손 안에 있는 이 책입니다. 섭리적 손길 여러분은 이 책을
더 공부할수록, 이 책이 점점 더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킹제임스성경》의 서문을 보면 “믿음의 옹호자이신,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제임스 국왕 폐하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 헌정사가 없는 성경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헌정사는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제임스 국왕 폐하께...”. ‘제임스’(James)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중 제임스라는 단어가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무엇인지 아는 이가 있습니까? 제임스는 영어가 아닙니다.
제임스는 야고보(야곱)라는 히브리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야곱)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영국 왕이 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야곱
왕”. 왜냐하면 야곱은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책입니다. 이 성경의 모든 저자는
유대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조오지가 왕권을
행사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제임스 왕에게만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허락”하셨고, 또 왕의 말이 아니라면 성경 어디에도
권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위가 있나니, 누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나이까?”라고 할 수 있느냐? ─ Where the word of a king is, there is power: and who may say unto him, What doest thou? 』(전도서
8:4)]. 여러분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킹
제임스”(King
James)는 아홉 글자입니다. “홀리 바이블”(Holy
Bible)도 아홉 글자입니다.
성경에서 아홉이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아브라함이 99세때, 그는 과실을 맺고 열매를
얻었으며,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가지고 가서『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고
말씀하셨고(창세기
9:1), 갈라디아서(정말 우연인지도
모를 신약의 9번째 책)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이겠습니까?
그럴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열매 맺는 삶을 원한다면, 바로 이 책이
여러분이 읽어야 할 성경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이 이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 때, 그들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들은
정말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경은『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7:16). 또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듯이, 39장에서
나뉘어집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쓴 저자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은 “제2
이사야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거짓 이론이지만, 어쨌든 이사야서는
39장에서 나뉘어지고, 성경도 39권째 책에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집니다.
어떻게 이사야는 정경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정경과 똑같이 그의 책
이사야서를 어디서 나누어야 하는지 알았겠습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글쎄
그건, 그들이 나중에 고치지 않았을까요?” 과연 그들이 그랬을까요?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킹제임스
성경은 70인역(LXX)
이후에 그 책의 목차가 정해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70인역은 구약성경에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킹제임스성경》은 70인역으로 인해서도, 히브리 구약성경으로
인해서도 그 책의 목차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무엇을 따라서 성경책의 순서가
정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책의 순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자, 그러면 성경을
펴고 진도를 조금 더 나가 보겠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라.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사도행전 27:25). 또 (민수기
23:19)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또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으시랴?
또한 이르신 것을 이루지 않으시랴?』 1611년판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킹제임스성경》은 31,175구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정 가운데 구절인 (시편 118:8)은『사람에게 신뢰를 두기보다 주를 신뢰하는 것이 나으며(It is better to trust in the LORD than
to put confidence in man)』라고 되어있습니다. 또 이 열네 개의 단어를 둘씩 일곱으로
세어볼 때 정 가운데 있는 두 단어는 “주”(the LORD)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책의 정 가운데 두 단어가 “주”라고
쓰여진 책은 이 세상에 한 권밖에 없습니다. 오직《킹제임스성경》한 권 외에는 이러한 현상이
없습니다. 그 책을 지금 제가 제 손 안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원본도 아니며, 히브리 원본도 아닙니다. “새미국표준역본(NASV)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미국표준역본은 적어도 네 구절 이상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새미국표준역본의 정 가운데 있는 구절은 ‘시편 118:8’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들고 있는
이 책과 똑같은 책이 있다면 제게 보여주십시오. 이 책과 바꾸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31,175구절이 있고 책의 정 가운데 위치한 단어가 “주”라고 쓰여진 책이 있다면 제게 가져오십시오. 이것이
우연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식으로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페이지 수를 세고, 단어를 세고 하는 이러한 작업들을
제가 억지로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라. 이제 ‘사무엘상 3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사용하시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3장’을 읽는 동안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표시해 보도록 하십시오. 【 사무엘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를 섬기더라. 당시에는 주의 말씀이 귀하여, 환상은 나타나지 않았더라.』─ 여기에서는 주의 말씀을 얻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또『아모스』에서는, 언젠가는 말씀의 기갈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아모스
8:11). 여러분이 구원도 받았고 하늘나라로 갈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마땅히 알아야 할 만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 책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무엘상 3장’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실 때는 이 책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 ‘사무엘상 3:21’에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느 교리문답서에서 “이 책을 무시하면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제 말은 그리스도가 인격과 신격의 두 개의 격(格)을 가지고 계시듯이, 이 책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 1:21b). 주님과 성경은 둘 다 살아있고, 같이 사랑받고, 같이 미움받으며, 또 둘 다 썩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렇듯 가깝지 않습니까! 자, 이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축복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서 있는 것을 알며,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주님과 이 책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이 책이 어떤 책이라는 것을 알며, 또 그 역사도 보아왔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저주와 멸시와 미움을 받아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그리고 이교도들과 불신자들, 무신론자들이 비웃어왔던 책입니다.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서 이처럼 미움받아 온 책이 없었음을 압니다. 이 책을 사랑하게 도와주시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이 책을 설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아버지여, 만약 우리가 해야만 한다면, 이 책으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게 하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피터 S. 럭크만/『 킹제임스 성경의 신비ː(제2장) 』... ┃
『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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