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7월 1일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히브리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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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도들을 본받자.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요한 드 라 살레는 처음으로 무료 고등학교와 교사들을 위한 신학교를 프랑스에 세웠다. 그는 넘치는 사랑으로 많은 일들을 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우지 못해 타락하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별것 아닌 일들에도 속상해하고 분노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과연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이러한 사명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던 그는 엄청난 재산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가난한 선생이 된다. 나는 그의 마음과 오늘날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임금 인상을 외치며 파업을 일삼는 교사들의 마음을 비교하곤 한다. 그런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기주의의 본보기가 된다. 그들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남기게 되는 추한 모습들은 그 후에 그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진리에 대하여 가르친다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드 라 살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실직 상태의 교사들로부터 많은 저항을 받아야만 했다.
산 세베리노의 파시피쿠스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주님의 말씀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이 세상은 신학 박사보다는 사도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도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방인들에게 선교사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사도직을 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을 당함으로써 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파시피쿠스의 발이 퉁퉁 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사랑하는 영혼들을 찾아다니며 권고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에 점차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은 내적인 혼란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다. 친구들은 그를 모욕하며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시피쿠스는 그 모든 고통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용기를 갖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불행을 견뎌나갔다. 파시피쿠스가 죽은 지 3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토록 아름답게 고통을 이겨낸 그의 얘기를 통하여 구원받게 된 사람들의 숫자는,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이방인들을 찾아가 전도를 했을 때 구원했을 법한 사람들의 숫자를 훨씬 능가한다.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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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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