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편 23:1∼6 】
1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3 그가 내 혼을 소생시키시고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4 정녕,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요,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심이라. 5 주께서 내 원수들의 면전에서 내 앞에 식탁을 마련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으로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진실로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내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 제38장ː고난의 효용 】
성경은 고난에 대하여 대단히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고무적입니다. 일반적인 종교적 분위기가 교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녀들은 성경에서 차지하는 고난의 교리만큼 비중이 큰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어떤 고난이든 경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인 우리로서는 그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신생아들로 하여금 신음소리를 내게 하는 첫 번째 감기의 충격으로 시작하여 노인의 괴로운 마지막 숨소리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인생 행로에는 아픔과 고통이 우리의 발걸음을 늘 따라 다닙니다. 이러한 고통은, 하나님께서는 이 고통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우리로 배우게 하고, 마침내 이 고통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게 합니다. 기독교는 인간 생활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것을 모두 효과적으로 다룹니다. 고난은 인간 생활의 실제적인 부분이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고난에 동참하셨으며, 그분은 고난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고난받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당하시고 찔리신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지 않은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상에서 한 번만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순교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어떤 늙은 성도는 “보라, 우리 주님이 자기 손으로 만드신 육체 안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시는지를” 하고 외쳤습니다.
절망스런 한숨을 쉬며 당신의 창조주가 곁에 계시지 않다고 생각지 마오.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당신의 창조주가 가까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지 마오.
그런데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이 받는 견디기 어려운, 비길 수 없는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도 남보다 현명하거나 훌륭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고난은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고난은 그에게 비참한 죄의 유산의 일부이며, 지옥의 고통의 확실한 전조가 됩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애쓰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보통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고통을 덜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들의 피부색이나 민족이나 신조가 어떻든 간에 모든 불행한 자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거하는 한 모든 인간의 자손들과 마찬가지로 손실, 사별, 알 수 없는 번민, 실망, 이별, 배신과 오만 가지 슬픔의 일반적인 고통을 어느 정도 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보다 적은 유익을 주는 고난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까지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복종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그 고난들은 특별한 성격을 띠게 됩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난이 가져올 미지의 축복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만 알려진 또 하나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꺼이 겪게 되는 자발적인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마음으로도 그려볼 수 없는 부(富)의 원천이며, 엄청난 가치가 있는 즐거움이요 보화입니다. 귀중한 것일수록 희귀합니다. 이 퇴폐적인 시대에 보화를 구하러 어두운 갱 속에 자발적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하지 않고는 내려갈 방도가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고난 속으로 강제로 몰아 넣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런 십자가를 우리에게 지우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원치 않는 부(富)를 안겨 주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부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에서 전심으로 봉사하는 자들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꺼이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며, 마귀를 대적하고, 지옥의 격노를 초래하는 데 생명을 걸고 자신들이 자원한 것을 이행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확보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의 시시한 것들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받기를 선택합니다. 그들은 괴로움과 고난을 이 세상의 분복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 위에는 십자가의 표가 있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에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씨가 말라 버렸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성도들이 무분별하게 안전만 추구해 온 것은 아닙니까? 십자가는 상징에 불과하며, 숭고한 시대의 피 없고 메마른 유물에 지나지 않는단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 고난받기를 두려워하며 죽기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나 장담하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해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 A. W. 토저/『 경건 생활의 기초ː(제38장) 』... ────────────────────────────────
(이사야 53:1∼12)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이는 그가 그 앞에서 연한 싹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것이며, 그는 모양도 우아함도 없으시니 우리가 볼 때에 그를 흠모할 아름다움도 없음이라.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라.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그로부터 숨긴 것같이 그는 멸시받았고 우리는 그를 존중하지 아니하였도다. 4 ○ 실로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지었는데도 우리는 그가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 줄로 생각하였도다. 5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 6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어 각자 자기의 길로 돌이켰으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도다. 7 그가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어린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며, 또 털 깎는 자들 앞의 양이 말없듯이, 그가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8 그가 감옥과 재판에서 끌려갔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선포하리요? 이는 그가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음이요, 그가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았음이라. 9 그가 악한 자들과 더불어 자기의 무덤을 마련하였으며 그의 죽음을 부자와 함께하였으니 이는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그의 입에는 속임수가 없었기 때문이라. 10 ○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는 고난에 두셨도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 11 그가 자기 혼의 고통을 보고 만족하게 되리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이는 그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할 것임이라. 12 그러므로 내가 위대한 자와 더불어 한 몫을 그에게 나누어 줄 것이며, 그가 강한 자들과 더불어 탈취물을 나눌 것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혼을 부어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며, 또 그는 범죄자들과 더불어 헤아림을 받았으나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중보를 하였음이라.
(예레미야 31:6) 이는 에프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들이 외치는 한 날이 있을 것임이니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주 우리의 하나님께로 나아가자.”하리라.
(히브리서 4:16/13:13) 16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 13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있는 그에게로 나아가자.
(히브리서 13:1∼25)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나그네 대접하는 일을 잊지 말라. 이렇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도 있었느니라. 3 옥에 갇힌 자들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하고 너희 자신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들을 기억하라. 4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 침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5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음이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기를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들려 주고 너희를 다스리던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과를 관찰하여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건하게 하는 것이 좋고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 음식을 따라 처신한 자들은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한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이곳에서 나온 것을 먹을 권한이 없느니라. 11 이는 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성소에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그 짐승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우기 때문이라. 12 그런즉 예수께서도 피로써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있는 그에게로 나아가자. 14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성이 없는 고로 우리는 장차 올 도성을 찾고 있노라. 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16 또한 선을 행함과 함께 나누는 것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물들을 매우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 있기를 자기들이 마땅히 설명해야 할 것처럼 하느니라. 그들로 기쁨으로 하게 하고 슬픔으로 하지 않게 하라. 이는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없음이라.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매사에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선한 양심을 가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라. 1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더 열심히 이 일을 행하기를 간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더 속히 돌아가려 함이라. 20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의 피(the blood of the everlasting covenant)를 통하여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이 보시기에 참으로 기쁨이 되는 것을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이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몇 자 적어 편지를 썼음이라.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려난 것을 알라. 그가 곧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다스리는 모든 자와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의 사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시 편 25:12┃욥기 23:10∼12 】
12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주께서 그에게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시리라. 10 그러나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발걸음을 따랐고 그의 길을 지켜 벗어나지 아니하였도다.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의 말씀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
【 & 제39장ː용광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
위험하고도 고통스러운 시련의 한복판에서 “망치와 줄과 용광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러더퍼드(Rutherford)였습니다. 망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만일 못이 감정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못은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못은 망치를 자기를 복종시키려고 사정없이 치고 못이 보이지 않도록 박으며 강타하기 위해 사는 반대자요, 잔인하고 무자비한 원수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망치에 대한 못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가지를 빼놓고는 정확한 생각입니다. 즉 그 못은 자기뿐 아니라 망치도 한 목수의 도구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못이 그 목수의 손에 망치가 쥐어져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망치에 대한 원한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목수는 망치를 든 다음 어느 부분을 쳐야 할 지와 그것을 치기 위해 어떤 망치를 골라야 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목수의 주권적 권리입니다. 못이 목수의 뜻에 순종하여 못의 장래를 위한 자상한 계획을 조금이나마 어렴풋이 알게 된다면, 못은 아무 불평 없이 망치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줄이 하는 일은 쇠붙이의 모양이 다듬어질 때까지 모서리를 문질러 다듬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괴롭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줄이나 쇠붙이나 모두 어떤 주인의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다듬어 낼 것인지, 쇠붙이의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 힘든 줄질을 얼마만큼 더 계속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줄이 아니라 그 주인입니다. 쇠붙이는 주인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고, 언제 또는 어떻게 줄질을 할 것을 명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용광로는 가장 나쁩니다. 무정하고 잔인하게도 그것은 거기에 들어오는 모든 타기 쉬운 것들에 달려들고 그 모든 것이 재가 될 때까지 그의 격노를 결코 누그러뜨리지 않습니다. 타기를 거부하는 모든 것은 본래의 의도나 목적을 잃은 채 형편없는 덩어리로 녹여집니다. 녹여지는 모든 것은 녹이고,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태우는 용광로는 그의 파괴적 격노를 풀거나 쉬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아는 러더퍼드는 어떻게 망치와 줄과 용광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까요? 그 대답은 단순합니다. 즉 그는 망치의 주인을 사랑하였고, 그 줄을 사용하는 주인을 흠모했으며, 자기 자녀의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용광로에 불을 때는 주님을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망치의 세찬 내리침이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는 것을 느꼈고, 그는 줄이 다듬어내는 것을 실제로 기뻐할 수 있을 때까지 줄을 참았으며,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용광로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과장한 말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사실 그대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오늘날과 같이 연약하고 세속적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지난 죄와 형벌을 피할 수 있고 마침내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고통 없는 체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속된 것에서 해방되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바라는 불타는 소원을 우리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 성자들과 성도들과 순교자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그것은 거북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전투에 단련된 영웅 앞에 서 있는, 싸우려 하지 않았던 병사의 침묵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 영웅은 접전시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그 증거로 영광의 흉터가 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성도를 성도답게 하시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 마귀와 사물과 사람들을 망치와 줄과 용광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큰 시련을 주기 전에는 그가 그를 크게 축복하실지 의심스럽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대의 우리들은 광대한 영적 스케일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연약합니다. 구원은 불쾌한 것으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찬송과 설교는 우리를 위해 위안과 쾌락의 종교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가시와 십자가와 피의 장소를 지나쳐 버린 우리는 망치와 줄의 작용을 묵살합니다.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거룩한 길에서 우리가 견디어내야만 하는 많은 고통은, 외적 원인으로 인해 생긴 고통이라기보다는 내적인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여행은 내적인 여행이며, 우리의 진정한 원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외적 상황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도 암흑과 낙심과 심한 자기 경시의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단지 대적과 하나님과 역경을 겪은 신자(believer)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내적인 고통은 위대하고 힘있는 거룩한 변화(聖化)가 이루어지는 곳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내적 고통을 겪는 마음만이 그 슬픔을 알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슬픔을 나누어 질 수는 없습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그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용광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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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1∼9)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폰토, 갈라디아, 캅파도키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타국인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충만할지어다. 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분은 그의 풍성하신 자비하심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4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 5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6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시 슬퍼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크게 기뻐하는 것은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써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8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 9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THE ROOT OF THE RIGHTEOUS by A. W. Tozer
Copyright ⓒ 1955 by Christian Publications, Inc., Camp Hill, PA, U.S.A.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Published by Word of Life Press, Seoul, 1974, 2002. Translated and published by permission. Printed in Korea.
【 & 제38장ː고난의 효용 】
【 & 제39장ː용광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 |
“(337) 주 날개 밑 즐겁도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밤이 어둡고 큰 바람 부나∼♪ 아버지께서 날 지킬 줄 아니 겁내지 않고 잘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그 안에 쉬기를 원하노라∼ 이 세상 내 슬픔 위로 못하나 주님이 안위와 복 주시네∼♬
3. 주 날개 밑 귀한 희락이 있네 생전에 걱정 다 지나도록∼♩ 거기서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예수께 쉬어 든든합니다∼
【후 렴】 주 날개 밑 즐겁도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토록 거하겠∼네∼♩∼♪♬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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