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20)
종교는 인간 본성이 불안정함을 정확하게 직시합니다. 또한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바라는 목적지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인간이 정지 상태로 있다면 종교는 그 즉시 종교의 중요한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변화되는 것이며 그들의 현재 상태에서 그들이 바라는 상태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은 변화되어야 하며, 또한 변화될 수 있으며, 그들 앞에 전개되는 변화는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다른 형상을 따라 다시 틀에 부어 만들되 이전 상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려 합니다.『...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로마서 12:2)라고 사도는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변화될 수 있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어떤 형상으로 변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들을 위한 모델이 되겠습니까?’라고 묻게 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매우 인기 있는 의사(擬似:실제와 비슷하나 실제의 것이 아닌 것) 기독교 철학은, 인간 본성 어딘가에 규범(norm)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서 크게 혹은 그리 멀지 않은 정도로 이탈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위치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이러한 환원을 돕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종교는 탐구심 많은 혼(soul)을 “조정”(調整)하되 제일 먼저 각 혼을, 그 다음에 사회를 조정합니다. 모든 것이 이 조정 사역에 의존하게 됩니다.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바르고 선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의 압력에 의해 초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의사 기독교 철학’은 이론을 전개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출생 때부터 혹은 그 이전에 환경에 의해, 나쁜 것을 배움으로써 해로운 영향을 받음으로써 뒤틀리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종교적 사고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인간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본래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선입관과 공포와 미신의 뒤틀린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의 선조들과 같이 시작은 옳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최고의 현재 목표는 손상된 그림처럼 회복되는 것이고, 그 결과 삶의 오점과 더러움 밑에 가려져 있는 주인의 손이 다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론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개념이 전적으로 그릇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서부터 생기는 모든 종교적 소망과 꿈은 기초를 상실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메시지는 이것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의롭지 못합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바 되었으니, 곧 내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기독교가 주장해 온 증거이며 인간 역사 또한 이것이 사실임을 실증해 줍니다. 우리 안에는 새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나 더 나은 자아와의 일치는 궁극적인 비극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사람은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전적으로 악합니다. 만일 인력과 같이 끄는 성질이 있는 죄에서 떠나려면 우리 자신 밖으로부터, 자기 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바로 이러한 도움을 풍성하게 그리고 흡족하게 공급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변화의 능력을 공급할 뿐 아니라, 새 생명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본받아야 할 참된 모범을 또한 제시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본(本ㆍmodel)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천한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하나님같이 행동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구원받은 인간 본성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 따라야 할 완전한 표준이 되셨습니다. 죄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신자(believer)의 본성이 변하는 이 변화의 시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함으로써 회심할 때 발견됩니다. 거듭남과 성화에 의하여, 신앙과 기도에 의하여, 고난과 연단에 의하여,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이 사역은 하나님의 꿈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실현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그의 자녀들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완전한 경지를 지향합니다. 한편 그리스도인 자신은 큰 변화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일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방법을 말합니다.
『 그러나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 』(고린도후서 3:18)
────────────────────────── A. W. 토저/『 경건 생활의 기초 』... ──────────────────────────
THE ROOT OF THE RIGHTEOUS by A. W. Tozer
Copyright ⓒ 1955 by Christian Publications, Inc., Camp Hill, PA, U.S.A.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Published by Word of Life Press, Seoul, 1974, 2002. Translated and published by permission. Printed in Korea.
【 & 제16장ː예수 그리스도는 본이 되심 】 |
“(337) 주 날개 밑 즐겁도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밤이 어둡고 큰 바람 부나∼♪ 아버지께서 날 지킬 줄 아니 겁내지 않고 잘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되니 그 안에 쉬기를 원하노라∼ 이 세상 내 슬픔 위로 못하나 주님이 안위와 복 주시네∼♬
3. 주 날개 밑 귀한 희락이 있네 생전에 걱정 다 지나도록∼♩ 거기서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예수께 쉬어 든든합니다∼
【후 렴】 주 날개 밑 즐겁도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토록 거하겠∼네∼♩∼♪♬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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