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7. 17. 12:56

삶의 문제 (2) -『감정을 다스리는 법』

     □ 삶의 문제를 정복하는 길 (2)  ─┐
    └─ 페리 록우드 지음 / 김인순 옮김

     

     

     

    & 감정을 다스리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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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아침 교회에서 예배 도중 신경쇠약으로 발작을 일으킨 한 주부 이야기를 들었다. 찬양대가 "내 혼아 깨어라, 모든 두려움 떨쳐버리라!"라는 찬양을 하자 그 가사에 그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주부는 지난 일주일 내내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애써왔던 터였다. 집안일을 하랴, 쇼핑하라, 살림하랴, 아이들 건사하랴, TV광고 챙겨 보랴... 주부의 하루 일과는 다 이런 식으로 한시도 느긋하게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또 교회에서 "모든 두려움 떨쳐버리라!"는 찬양을 들었으니, 그게 그녀에게는 너무 큰 부담과 긴장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그 날의 재앙은 그 날로 충분하니라.』(마 6:34)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내일 일일랑 딱 덮어 두고 우리에게 오늘을 사는 법을 터득하라는 뜻이다. 이일저일 걱정하다보면 긴장이 누적되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그날 걱정하기도 모자라는 판이니 내일 일은 덮어 두고 오늘 일에나 정신을 집중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영국 국교회의 존 해리 뉴만 목사는 로마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타고 있던 배가 범선인지라 바람이 불지 않자 항해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1833년 6월 16일이었다. 여러 시간이 흘렀지만 배는 꿈쩍할 줄 몰랐다. 뉴만은 갑판으로 나가서, 바람을 보내주셔서 곧 다시 항해를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선장에게 가서 말했다.
      "선장님도 뭔가 좀 손을 써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선장은 "목사님이 항해하고 싶은 것만큼이나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항해하다보니 기다리는 법을 또 배웠지요. 우린 한 번에 한 발짝씩 떼어놓지요." 선장은 그때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별이 다시 빛나는군요. 오늘 밤 바람만 불어 준다면 저 별을 보고 해도를 따라 항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에 뉴만은 놀라서 물었다. "저 작은 별이 안내를 해준다 그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낮일 때는 태양이 필요하지만 밤일 때는 작은 별 하나가 필요한 거지요." 그때 뉴만은 뭔가를 깨달았다. "저는 지금껏 저를 안내할 태양을 찾았었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한 별을 주셨네요. 하나님께서는 내게 한 교훈을 주시려고 나를 여기에 떨궈 놓으셨군요." 그 순간 받은 영감으로 뉴만은 다음과 같은 위대한 찬송시를 썼다.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도하소서...『그 날의 재앙은 그 날로 충분하느니라.』우리가 긴장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쉴 줄을 모르는 사람은 안절부절 해지기 마련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고전 9:25). 이처럼 우리는 감정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자제심을 잃을 때 나의 이성 또한 잃었네
         내가 화내며 행한 것들은 결코 자랑할 것이 없네
         내가 화가 나서 말할 때 내 볼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내가 말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항상 내뱉게 된다네

         내가 화가 날 때 친절하게 행동하거나 지혜롭게 처신한 적이 없었네
         그래서 내가 행한 많은 일들로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네

         내 인생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나는 전부 잃기도 했고 혹은 전부 얻기도 했네
         하지만 내가 화내면서 써버린 아까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화 내기 쉬운 감정을 이길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이 화가 난다면 우리는 갈보리의 빛으로 그것을 가져와 고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한일서 1:7은『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계신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에게서 배신을 당하셨고,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비난을 받으셨으며, 그분의 가장 신실했던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셨다.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분은 높임을 받으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한 이름을 받으셨다.
      그러하기에 그분은 지금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것이다(히 4:15). 바울은 많은 고난을 받았고 숱한 오해도 받았으며 또 과중한 긴장 속에 있었기에 그것들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빌립보서 4:4-13에서 그는『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내가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많은 고난 가운데서 깨달은 것은, 모든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은 주님과의 깊고 변함없는 교제라는 것이다.

      염려나 걱정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하고도 슬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상한 마음과 고통스런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다윗은 시편 38:17에서『내 슬픔은 계속해서 내 앞에 있음이니이다.』라고 울부짖었다. 욥이 그의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잃었을 때 상심한 마음에서 나오는 극심한 고통을 욥기 2:13을 통해 읽을 수 있다.『그리하여 그들이 그와 함께 칠 일 낮과 칠 일 밤을 땅바닥에 앉아 있었으나 그에게 한 마디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그들이 욥의 고통이 매우 심한 것을 봄이더라.』
      그렇다.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한 분 주님께서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그 내막을 속속들이 다 아신다.『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라.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그로부터 숨긴 것같이 그는 멸시받았고 우리는 그를 존중하지 아니하였도다. 실로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지었는데도 우리는 그가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 줄로 생각하였도다』(사 53:3,4). 우리 주님의 가장 큰 슬픔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우리의 슬픔은 앞으로 다시 그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굳은 확신으로 인해 극복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9에서『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슬프지만, 그가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기에 훨씬 좋다는 것(빌 1:23)을 안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슬픔 가운데서도 새로운 희망을 준다. 우리는 그들이 죄와 고통과 눈물이 있는 이 세상으로 되돌아 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과 헤어진 것은 슬프지만, 소망이 없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슬픔과는 차원이 다르다(살전 4:13).
      지금 여러분들 중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하여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님께 여러분의 슬픈 감정을 맡기면 그분은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다. 성경에서 "믿는다"라는 단어가 세가지 시제로 사용되고 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슬픔에 잠겨 소망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을 때 주님의 마음은 슬펐음에 틀림없다. 그들은『우리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분이 그분이라고 믿고 있었나이다.』(눅 24:21)라고 말했다. 그들은 과거시제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분을 "신뢰하라"(지금)고 말했으나 그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만 믿었던 것으로 국한시켰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현재 시제로서 "지금 믿는 것"이다.『내가 무서워할 때에 주를 신뢰하리이다』(시 56:3). 이것은 주님께서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밝은 낮 동안만이 아니라, 어두운 구름이 햇빛을 가릴 때에도 매일 매순간 그분을 신뢰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또 미래를 보장하는 신뢰가 있다.『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사 12:2). 두려움은 신뢰하는 마음을 쫓아내고 신뢰하는 마음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믿음의 기초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과거의 믿음" 위에 세워진 것이기에 확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 매일 우리의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돌보신다는 "현재의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평안을 누린다. 또한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실 것에 대한 "미래의 믿음"을 우리는 갖고 있다.

      시카고의 한 사업가 스파포드는 다섯명의 자녀 중에 네 명이 바다에서 사고로 익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찬송시를 작시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가 걱정과 분노와 슬픔에 직면할 때도 있고, 뿐만 아니라 고통 그 자체에 직면할 때도 있다. 처음부터 고난은 인간의 문제였다. 고난은 어쩌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욥은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난의 여로가 끝나갈 즈음 그는 다시금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했다.『그러나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고난은 종종 굉장한 시험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얼마나 더 고통을 겪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어째서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허락하실까? 현재 내가 직면한 고통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대답대신 약속을 주신다.『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전 10:13).
      사람에 따라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다. 승리의 비결은 주님과 끊임없는 교제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옛날 이야기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어느 날 뜨거운 햇살에 피로에 지친 한 나그네가 그늘진 나무 밑에서 잠시 쉬게 된다. 저녁 그림자에 잠이 깬 나그네는 서둘러서 밤에 유숙할 곳을 찾았다. 마침내 작고 허름한 방을 찾아 거기서 밤을 지내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찾아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향긋한 냄새는 계속 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나는 냄새지?" 그때 나그네가 옷을 만지는데 작은 흙 덩어리가 옷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그는 해답을 얻었다. 그 향긋한 냄새는 바로 말라버린 작은 흙덩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흙덩이에서 스마르칸의 보석 향기가 나다니, 이해할 수 없군. 이 흙덩이는 아마 값나가는 상품이 될 거야. 그런데 어떻게 흙덩이에서 이렇게 향긋한 향기가 나는 거지?"
      "주인님, 저는 보통 흙덩이에 불과하답니다. 저는 저 자체로는 어떤 아름다움도 어떤 향기도 낼 수 없습죠. 이 세상에서 저처럼 보잘것없는 게 또 없지요. 그런데 제가 향기를 내는 비결은 바로 장미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이 얘기는 샤론의 장미와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의 비결이다. 아무리 비천하게 살지라도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그의 삶은 향기롭고 사랑스럽게 된다.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 내면에는 외로움을 느끼거나 혹은 억제된 것들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 그분의 영의 향기로운 냄새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듬뿍 배어들게 된다. 샤론의 장미, 아름다움 그 자체이신 그분과 함께 사는 삶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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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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