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처럼 이스라엘을
통해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깨달았으며,
직접 사역도 하였으나 세상에서의 야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경해 왔던 영화감독의 꿈을, 그것도 세계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이루었는데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 포기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주님의 사역과 세상 영화를
동시에 추구함에 있어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과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여러 기획들을 추진했다. 액션 영화,
공포 괴기 영화, 코미디 영화 등등 여러 장르의 영화들을 다 한번씩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성사되리라고 믿었던 기획들은 계속 깨졌다.
주님의 사역도 형통되지 못하고 계속 어려움에 봉착했다. 갈등이 일어났고,
고난이 닥치기 시작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했던 나는
갈등과 고난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면서 그만 지칠대로 지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적으로 영적전쟁에
임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사탄이 자신의 노예와 인질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는 인간을 그대로
놓아둘 리가 있겠는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내려 할 때 파라오는 완강히 거부하며 협박한다. 열 가지의 재앙이
점차 강도 높게 내려지면서 하는 수 없이 떠나기를 허락하지만, 아이들과
재물들은 두고 가라든지, 또는 멀리 떠나지는 말라든지 하는 회유책과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래도 모세가 끝내 굽히지 않고, 마침내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임 당하게 되자 그제서야 굴복한다. 그러나 이집트를
벗어나자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가 몰살시키려 시도한다. 이 이야기는
사탄이 자신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떤 작전을
쓰는지 가르쳐 주는 교과서적인 모형이다. 이처럼 영적전쟁은 치열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순간부터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는 군대’의
군복을 입게 되는 것이며, 자동적으로 적에게 노출되고 공격표적이 되는
것이다. 전쟁터에 출전한 군인이 적에게 노출되어 공격의 표적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면, 그 군인은 총 한방도 쏘아보지 못하고 사살되거나
포로가 될 것이다. 더구나 주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으면서도 계속
세상에 소망을 둔다는 것은 군인이 오히려 적에게 유리하도록 이용되는
위험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디모데후서 2:3, 4). 물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업에 충실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세상에
충실은 하되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만 소망을 두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반드시 가야 하는 일인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 세상 영화의 제작은 일반 생업과 달리 하나님의 메시지와
반대되는 세상적인 가치를 Promote(선전)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적전쟁의
처절한 현실을 절감하면서 나는 “주님의
사역이냐 세상이냐”의
양자 택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져 갔다. 그러나 알고
보니 주님은 나에게 영화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 만드는
달란트와 열정을 주님이 주셨는데 포기하게 할 리가 없었다. 다만 영화
만드는 달란트와 열정을 세상과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침내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영화를 하기로 결단했을 때 갈등은 사라지고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나의 이 체험은
한국 교회에도 해당되고 적용된다고 본다. 지질이도
못살아 가난에 한이 맺혔던 한국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하는 경제부흥운동에
혼신을 다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서,「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부의 추구를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 한국 교회들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받았다.
한국 교회가 받은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서 주신 은혜였다. 3저(底) 현상을 비롯한 여러 여건들을 유리하게
만들어 주시어 한 때 한국은 세계 선진국의 대열로 비약할 만큼 끝발이
좋았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는 항상 타락을 가져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다.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교회는 예수님 믿으면 잘 살게 된다는 물질적인 기복에 신앙의 초점을
맞추었고 결국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되었다. 교계에서 가장 흔하게 인용된
성경의 한 구절은『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번성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요한삼서 1:2)였다. 많은 가정에서, 가게에서, 사업체에서 이 구절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놓을 정도였다.『네 시작은 미약하였어도 네 나중 끝은 크게 증대하리라.』(욥기 8:7)의
구절도 인기가 좋았다. 이 말씀들을 물질적인 복으로만
해석했다. 급기야는 물질적인 부를 이루지 못하면 신앙이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는 풍토가 되었고, 물질만능주의를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다. 이집트를
빠져나와 카나안 복된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할
때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먹던 빵과 마늘과 파를 그리워한 상황과도
같았다. 아니, 한국 교회는 한술 더 떠 아예 이집트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한국 교회에서는 모세와 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한 사람도 배출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물론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의 우상숭배로
인한 타락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미국은
어떠한가? 클린턴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을 벌일 때 참모들이 사무실
벽에 붙여 놓고 항상 바라보며 표어로 삼았던 문구가 있었다.
「 It’s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그래서 그는 당선되었고
또 재선되었다. 그러나 경제만을 추구한 결과는 무엇인가? 오늘날 미국인들은
도박과 복권투기에 온통 혼을 빼앗기고 있으며, 도덕적인 퇴폐와 마약과
범죄의 급증, 그리고 가정의 파괴 등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총기를 들고 등교하여 선생님들과 급우들을 난사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클린턴
자신은 어떠했는가? 딸 같은 자원봉사자와 버젓이 백악관에서 1년 6개월 동안이나 온갖 추잡한 관계를
맺어왔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였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60% 이상이 먹고 사는 경제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대통령의 도덕적 타락은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의 국민들이 취할 태도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사는 경제문제, 즉 세상에 소망을 둔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사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는 항복이다.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 먹고 사는 경제문제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세상에 소망을 두고 인간의 힘에만 의지하여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났던 사람이 다시 사탄의
지배 아래에 되돌아가게 되면 형편이 그 전보다 더욱 나빠진다. 보복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난 추잡한 관계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은, 인간이 사탄의 지배 아래에 놓일 때 그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귀들의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천사들에게 계급과 지위가 있듯이 마귀들에게도 계급과
지위가 있는데, 가장 저급하고 추악한 마귀들이 ‘섹스’(sex)를 통해 인간들을 타락시키고
퇴폐케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인간이 사탄의 지배 아래에 놓일
때 가장 저급한 마귀들에 의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해주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온 세계가 섹스 일색으로 타락해
가는 현상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 수많은 미국의 교계
지도자들 중에서도 클린턴을 향해 그리고 미국을 향해「 It’s spiritual warfare, stupid! 」(문제는 영적전쟁이야, 이 바보야!) 하고 담대히 외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또한 안타깝다. 자기 혼자만 믿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남에게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는 사명자가 다시 사탄의 지배 아래에 되돌아
갔을 때는 더 가혹한 보복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고, 패가 망신하게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한국의 사명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이처럼 막중한 사명을 가진 한국 교회가 일단 이집트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갔으니 사탄의 엄청난 보복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인 고난을 당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무색케
할 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며 퇴폐해가는 현상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되돌아 갔다가 다시 빠져 나오려면 그만큼 더 어렵다. 그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특수부대가 된 한국은 승리하는 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제 와서 군복을 벗고 불명예 제대를 한다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사탄은 타협이 없다.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는 멸망밖에
없다. 어서 이집트에서 다시 빠져 나와야 하며 카나안을 향해 한눈 팔지
말고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사명자는 그에 따르는 책임도 크기 마련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영화에서 유대인 토플은 러시아 유랑생활의 좌절과 고난에 지친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렇게 호소한다.
“ 하나님, 우리가 선민인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가끔 다른 민족을 좀 택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
사명을 위해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었지만 그 선택을 사명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겨 교만해짐으로
결국 실패하게 되었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되어 뿌리까지
뽑힌 채 전세계에 흩어져 참혹한 수난을 받게 되었다. 한국이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예수쟁이들 때문에 우리가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하느냐’고
불평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수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특수부대원으로 군복을 입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운명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타시스로
도망가던 요나 한 사람으로 인해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고, 배 안에
탔던 모두가 빠져 죽을 운명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 원인을 밝혀냈고, 요나를 바닷속으로 내던짐으로 말미암아
무사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호’는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풍랑을 만나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 아, 그렇다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국민의 사분의 일에 해당되는 예수쟁이들을 모두
동해 속으로 내던지면 될 것 아닌가? 설사 그렇게 하여 잠시 무사하게
되더라도 결국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멸망 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결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 배를 함께 탄 국가와 민족의
공동운명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집트를 다시 빠져 나와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엄청난 복과 영광이 있게 된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한국호의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그 원인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배를
구출할 선장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호는 과연 타이타닉의 비극을 맞을
것인가?
┃ 홍 의 봉/『 세상이 무너져도 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ː(제11장) 』 ... ┃
세상이 무너져도
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by 홍 의 봉 (洪 義
峰)
1999/Yele Christian
Book Room. Seoul, Korea.
Copyright ⓒ 洪 義 峰 1999. All rights
reserved.
【 제11장ː타이타닉의 비극 】
|
대한민국의 특공용사들이여!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아가자! 승리의 십자가를 세울 때까지...
━ 악장에게, 마스킬, 코라의
아들들을 위하여. ━
『 1 ○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오니 내가 언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겠나이까? 3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 4 내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 내
안에 있는 혼을 토해 내나니 이는 내가 전에
무리와 함께 갔었고 거룩한 날을 지키는 무리와 더불어 기쁨과 찬양으로
소리지르며 하나님의 집으로 갔었음이니이다. 5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그를 찬양하리라. 6
○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혼이 내 안에서 낙담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인들의 땅과 미살 산으로부터 주를 기억하리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뒤덮나이다. 8 낮에는 주께서 그의 자애를 베푸실 것이요,
밤에는 그의 노래가 나와 함께 있으리니 내 기도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드려지리로다. 9 내가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
하리라 10 칼로 내 뼈를찌름같이 내 원수들이
나를 비방하며 그들이 날마다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도다. 11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나의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시 편 42:1∼11)
『 16 주를 찾는 모든 자들로 즐거워하고 주 안에서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로 끊임없이 말하기를 “주께서는 존귀를 받으소서.”
하게 하소서.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해도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나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구원하시는
분이시니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시 편 40:16, 17)
『 3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거할 것이요, 진실로 그가너를 먹이시리라. 4 또 주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들을 네게 주시리라. 5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또 그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어주시리라. 6 그가 네 의를 빛같이 가져오시며 네 공의를 대낮같이
가져오시리라. 18 주께서는
정직한 자의 날들을 아시나니 그들의 유업이 영원하리로다. 19그들은 재앙의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기근의 날들에 배부르리라. 20 그러나 악인은 멸망하고 주의 원수들은 어린 양들의 기름같이 되리니 그들이타서
연기 속으로 사라지리라. 23
선한 사람의 걸음은 주께서 정하시니 주께서 그의 길을
기뻐하시느니라. 24 그가 넘어져도 완전히 쓰러지지
아니함은 주께서 그의 손으로 그를 붙드심이라.
25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받거나 그의 씨가 걸식함을 아직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가 항상 자비로우며 꾸어
주나니 그의 씨가 복을 받는도다. 27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영원 무궁토록
거하리라. 28 주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씨는 끊어지리로다. 29 의인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며 거기서 영원히
거하리라. 30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의 혀는 심판을 말하는도다. 31 그의 마음에는 그의 하나님의
법이있으니 그의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7 온전한 사람을 살펴보고 정직한자를 볼지어다. 그
사람의 마지막은 화평이니라. 』(시
편 37:3∼6, 18∼20, 23∼31, 37)
━ 올라가는 노래. ━
『 1 ○ 주를 신뢰하는 자들은 시온 산과 같아서 요동치 아니하며
영원히 거하는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주께서는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막대기가 의인의 구역에 머물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 ○ 오 주여, 선한 자들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소서. 5 자기들의 비뚤어진 길로 치우치는 자들을 주께서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가게 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위에는 화평이 있으리로다. 』(시 편 125:1∼5)
King James Bible 1611
...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함으로써 그 믿음 위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믿음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합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믿음 자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믿음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를 믿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자기의 모든 선한 일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믿음의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인간이 구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기의 혼을 그분의 손 안에 맡기는 전적인 의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세
번째 부분으로,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하신 약속 안에 베풀어 주시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취하고 그것을 받아먹고 살며, 그것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자기 부인, 의지, 그리고 최소한의
자기 적용이 없이는 분명 진정한 믿음이란 없습니다. 어떤 혼 안에서
이 세 부분이 발견된다면 그 혼 안에는 진정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
』
(디모데전서 1:15)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죄인들을
구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로 더럽혀져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죄는 매우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양심이 진정 죄의 더러움에
대하여 깨어 있을 때, 그것은 극도의 죄가 너무나 끔찍하고 가증스러운
것임을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육신으로 더럽혀진 그 옷조차도
증오하라』(유다서
1:23b)고 배웁니다. 또한 죄에 맞서는
의로운 분노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도덕이 미워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사회가 버린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그 자체가
본질까지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했으면서도, ‘사회’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 가엾은 여인에게 “저 여자를 내쳐라! 그 추악한
자를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게 멀리 내쫓아 버려라!”고 외쳐 댑니다. 그 여인은 이 집 저 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내쫓김을 당합니다. 그들은 의로운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사회의 규범을 어긴 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한 순결함으로 인해, 죄의 끔찍함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민감하셨으며, 우리가 느끼고 깨닫는 것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의 가증스러움에 대하여 민감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심지어는 세금쟁이들과 창녀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고 죄인들과 함께 사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과 한 무덤에 거하셨으며 강도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늘나라에서
새 노래로 노래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죄인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죽임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요한계시록 5:9b).
그렇습니다. 죄의 모든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그분은 또한 ‘저주 아래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는
저주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결코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가 얼마 동안은 번성하는 듯 보일지라도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벌레가 그 위에 임할 것입니다. 만유의 위대한 심판자로부터
나오는 입김이 악으로 자라나는 모든 것들을 말라 버리게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불길은 모든 죄악에
대하여 가장 낮은 지옥에까지 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즉 그 저주를 대신 친히
지시고 저주받은 나무에 달리심으로써 저주받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밤 자신의 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저주를 느낍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생명의 모든
샘물을 말라 버리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께서는 ‘능력이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죄가 다스리는 곳은 어느 곳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소멸되어 버립니다.『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예레미야
13:23).
그러나 여러분에게 능력이 없을 때, 심지어는 그를 믿을 수 있는 능력과
여러분 자신의 죄를 느낄 수 있는 능력, 더 나아지려는 갈망마저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조차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선한 갈망 또한 그분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린 맨 처음 기도도 그분 자신의
호흡으로 주신 것이요, 죄의 무게 아래에서 우리가 내쉰 맨 처음 한숨도
바로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로마서 5:6). 어떠한 선(善)의 흔적도, 자취도
찾아볼 수 없는 자, ‘경건치
아니한 자,’ ‘하나님이 없는 자,’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전혀 소망 없이 살고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이 피난처의 문을
어떻게 활짝 열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문의 돌쩌귀를
뽑아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둥을 뽑고,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악한 영이 와서 죄인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어떠한 혼을 향해서도 그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을 것입니다.
... 여러분 모두가 그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식이, 여러분의 평안이 더욱더
깊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겉으로만 평안한 척하는 거짓된
안식이 아니라, 시험과 연단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참된 안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식이 영원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평안이 결코 흐름을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평안이 항상 안전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국은 파멸로 끝을 맺게 될 거짓된 평안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생애를 통하여 영원히 지속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는 그분의 평안 가운데로 영원히 녹아 들어가게 될 참되고 견고하며,
의로운 평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오라.” 그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네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로 오라.’ 단지 너희의 모습 그대로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자들아,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수고하는 자들이다. 너희가 더러워진 두 손을 씻기 전에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연약하고 힘이 빠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내게로 나오는 것에는 너희의 힘이 필요
없다. 내 팔에 연약한 너의 몸을 맡기고 내 품에서 눈을 감거라. 네가
이미 그렇게 내게로 왔기 때문이다. 』
《찰스 H. 스펄젼의 설교문에서
발췌...》
『 1:4 우리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
』
(요한일서 1:4/2:1/5:13)
“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지 않아 공중으로 내려 오셔서 그분의
신부인 교회, 즉 성도들(Saints)을
부르실 것이다. “이리 올라오라.” 고 말씀하실 그 음성은, 마치「솔로몬의 노래 2:10」에서 왕이 처녀를 향해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하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때 온 세상에 있는
그분의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 공중으로 끌려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携擧ㆍRapture)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
─ 《그림으로 보는 요한계시록》(2006ㆍ말씀보존학회) ─
『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디모데후서 4:8)
『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디도서 2:13)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거칠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이다.
(시편 119:165)
〔사도행전 16:3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14:24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2:17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이사야 14:24┃아모스
4:12┃요한일서 2:17)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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