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의 일차적인 목표는 우리 생활 중에서의 죄의 결과에 관한 토의를 목표로 하지만 먼저 죄의 정의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말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또한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죄는 곧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 모든 불의가 죄이나..."(요일 3:4, 5:17). 사도 바울은 말했다.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솔로몬은 말했다.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잠 24:9). 신학자들은 죄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헬라시대 철학자들은 죄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 소녀는 죄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전부라고 말한다. 이 소녀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자연적인 성품을 가진 "옛 사람"의 소욕과 정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 우리는 흔히 술취한 자나 행음자나 도적질 하는 자나 거짓말 하는 자 또는 매춘부를 가리켜 죄인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 3:23).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어 각자 자기의 길로 돌이켰으나"(사 53:6). 하늘로 가는 데는 두 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전혀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엔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적인 메세지는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죄가 없는 한 사람이, 죄를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은 한 사람이 우리를 위해 죄인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함이었다(고후 5:21). 그는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그가 만든 희생을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한다. - 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믿음을 가질 때 그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는다. 그의 죄는 바다의 심연속에 던진 바 된다(미 7:19). 그의 모든 죄는 하나님의 등 뒤에 던지운 바 되었다(사 38:37). 그의 허물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도말되었다(사 44:2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의 죄과는 그에게서 멀리 옮겨졌다(시 103:12). 다시는 그의 죄악을 기억지 아니하신다(렘 31:34). 그렇다면 한 번 용서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좋다는 뜻인가?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 6:1).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는냐?"(롬 6:2). 그는 또 말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롬 6:14).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로부터(from) 구원하려고 오셨지 죄 중에 두시려고(in) 오신 것이 아니다(마 1:21). 한 성도가 구원을 받은 후 죄를 짓는다면? 그에겐 무엇이 결과로 남을까? 그의 구원이 없어지고 또 다시 구원을 받아야만 할까? 성경은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아래 새 것이 되었다 해도 죄를 짓는다. 요한일서 1:8을 보라.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후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요일 2:1).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다음 부분은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성도의 생활중에 나타나는 죄의 결과
그렇다면 우리는 이 죄 짓는 것을 가볍게 다뤄도 좋다는 말인가? 우리가 죄를 지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최소한 다섯 가지 즉각적인 결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 첫째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떨어진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의 아들됨 곧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의 교제가 단절된다.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요일 1:7).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명하도록 하자. 현대가정에서는 전부 전기회로 차단기(circuit breaker)가 있다. 만일 그 집에 어떤 전기 회로가 지나치게 충전되면 스위치가 자동적으로 움직여서 그 회로에 있는 모든 전기불이 나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가 죄를 짓게 되면 전기불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생활은 암흑 속에 던지워진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만다.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가지게 되는 기쁨대신 그들은 괴로움을 맛보게 된다. ━ 둘째로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리는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고 구원의 즐거움을 잃게 된다. 우리는 구원의 즐거움을 잃게 되자 구원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우리는 모든 사람중에서 가장 비참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우리 성도중에 죄를 즐겨 할 사람이 없는 이상,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떨어지면 하나님의 것들을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간증이 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위신을 깎게 된다. 우리는 거침돌이 된다. 디딤돌의 역할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 셋째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용하려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더러운 고로 우리를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더러운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사야 52:11에서, "주의 기명들을 메는 너희는 정결케 되라."라고 명하셨다. F. B. Meyer 박사는 한 좋은 예화를 말해 준 적이 있다. 그것은 그가 쓰고자 원할 때 잘 쓰여지지 않는 조그마한 펜이었다. 그것은 사하라 사막처럼 메말라서 쓰려하면 쓰여지지 아니하나, 쓰지 않고 놓아둘 때면 온통 종이를 망쳐 놓는다. 그는 다른 새펜으로 대신쓴다. 그리고 먼저 것은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버린다. 그러다가 여행을 떠나려고 여분의 펜을 가져가고 싶어서 여러개의 펜들이 들어있는 서랍속의 펜통을 더듬는다. 하나 속에 잡혀 꺼내 보니 그것은 이전의 그 펜이었다. 그것을 사용하기는 커녕 이번에는 더 깊숙히 집어 넣어버린다. 이 때 그 펜은 생각한다. "나는 그가 나를 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의 소유물이다. 그러나 왜 나를 다시 집어 넣어 버렸을까? 한 때는 나를 사랑하고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내게 손도 대지 않다니 웬일일까?" 그에 대한 답은, "이 조그마한 망가진 펜아 네가 나를 더럽히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일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더럽히는 기구는 도저히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그를 사용하려 든다. 반대로 그분은 우리를 버려둔다. 우리 중에는 과거 어느 한 때는 굉장히 하나님의 날카로운 증인이었으나 무슨일이 있은 후 하나님에 의해 선반위에 버려진 채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다. 바울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 9:27)라고 말하였다. 그는 선반에 올려져 쓰이지 않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 넷째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한다. 다윗은 말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생각하면 주께서 내게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이사야는 말했다. "보라,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사 59:1-2). 성령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여 일체가 되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는 방해를 받게 된다고 한다. 기도란 우리가 소유하는 크나큰 특권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살아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비극인가? ━ 다섯째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 주위에 있는 울타리가 무너진다. "주의 천사가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치고 그들을 구해 내는도다."(시 34:7).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주의 울타리가 무너질 때면 우리는 사탄의 모든 공격에 내어 놓은 바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신체적으로 공격해서 우리의 건강을 파괴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게 한다. 그는 우리의 가정을 공격하고 우리의 사업을 공격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한 손을 대지 못한다.
어떻게 교제를 회복할까?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떨어져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judge ourselves) 판단받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11:31-32).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재판관이 되어 우리가 저지른 나쁜 일에 대해 단호히 정죄해야 한다. 우리는 죄를 버려야 한다.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사 55:7).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께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서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기꺼이 자백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생활에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기쁨을 가져올 수 없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가장 축복된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1장 9절이다.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어떤 성경교사들은 우리가 지은 죄의 이름만 나열하면 자동적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성경은 그와 같이 말하고 있지 않다. 자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네가 한 것이 옳지 못하다" 하신다. 나는 "맞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동의합니다."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백할 때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제가 지은 죄가 있거든 사해주십시오." 또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등의 기도는 시간의 낭비다. 자백의 기도는 모름지기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오 주님, 저는 도적질 했습니다. 저는 거짓말 했습니다. 저는 화를 냈습니다. 나쁜 마음을 품었습니다." 자박을 제외해 놓고서는 천하에 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허해질 때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은 무차별의 자백은 주님의 이름을 더럽게 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백을 자기의 죄의식을 탈피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 이가 있다. 이런 자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만일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나"는 오직 "하나님"께 "나의 죄"를 자백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만일 어떤 개인에게 죄를 지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가서 자백하고 용서함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만일 교회에 죄를 지었다면, 전교회 교인이 있는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자백해야 할 것이다. 달리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의 죄는 그 죄가 알려진 만큼 폭넓게 자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기는 쉽지만 또 그렇게 해야 당연하지만,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게 지은 죄를 자백해서 이를 용서받는 것도 좋지만 한가지만은 삼가야 한다. 즉 공중앞에서 자기의 더러운 누더기를 씻어 버려서는 결코 안된다.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자백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나?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히 12:6)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이를 적당히 넘겨 보내시지 않는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의 악행을 잘 묵인해 줌으로써 그 자식을 망쳐 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시기에는 너무나 거룩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공평하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
주께서 꾸지람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은 죄를 자백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되나? 성경에서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한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거니와, 나는 그에게 그 죄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요일 5:16) 사망에 이르는 성도를 지옥에 보내는 처벌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자백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질책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육체적인 사망을 의미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사도 바울이 말한 바,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고전 11:30) 이 때의 잠든 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잠든 자는 으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의미한다.(살전 4:13).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꾸지람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다시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고집과 반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 집으로 데려 가신다. 지옥으로는 보내지 않으신다. 그를 조금 일찌기 데려가서 집 안에 있게 한다. 다음 예화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내가 여덟 살 되던 어느 여름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두 가족이 우리 집에 초대되어 왔다. 자기의 부모들이 집 안에 있는 동안 어린이들은 뜰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마침 그 집 정원 분수대에 있는 분수용 수도가 물을 잔디에 뿌리고 있었다. 그 근처에서 노는 중에 우리 중 한 아이가 그 물속으로 왔다 갔다 하며 뛰어다니기 시작하여 그를 따라 모두다 물 뿌리는 속으로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 그 때 아버지가 나에게, "호머야, 그러지 말아"하고 꾸지람을 하셨다. 잠깐동안 주의를 했으나 어느 틈에 또 지나갔다. 다른 아이들도 재미나게 따라서 지나갔다. 아버지께서 또 다시 경고하셨다. "그러지 말라고 하쟎았니!" 얼마동안은 또 하지 않았으나 이내 또 하고야 말았다. 다른 애들도 재미나게 합세했다. "호머야, 다음 한 번만 더 하면 집 안에 가두어 버릴테야!" 하고 강력히 꾸중했다. 그렇지만 뛰어 놀다가 또 잊고서는, 그리고 아마 손님이 계시니까 차마 벌하시지는 않으시겠지 하는 생각에서 또 다시 지나갔다. 엄격하신 아버지는 "호머야, 너 집으로 당장 들어와 있어!" 하고 호령하셨다. 아버지의 성격을 아는지라 나는 복종했다. 그리고 내가 집 안으로 들어 온 후 어린애들은 다시는 그런짓을 하지 않고 잘 놀았다. 내가 여러번 아버지의 꾸중을 거역했지만 나는 역시 아버지의 자식이다. 아버지는 전혀 나를 자식의 관계까지 끊고자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권고를 거역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나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벌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적인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죄에 대해 꾸중하신다. 우리가 계속 고집을 세우면 그 죄로 인해서 질책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그의 아들이라면 제아무리 말을 듣지 않아도 역시 그의 아들이다.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이상 우리는 지옥으로 버림을 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고. 하나님은 우리를 낙원으로 불러가는 것이다. 어느 날 우리가 주의 면전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고집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곧 질병, 심장마비, 자동차사고, 비행기추락 또는 기타 어떤 심한 재난을 통해 일찍 불리움을 당한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 직접 자백하라! 너희 죄를 쌓아 올리지 말라. 자백하지 않고서도 어떤 고비를 넘길 것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는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니,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민 32:23).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걷는 것이다.
────────────────────── 호머 던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라』... ──────────────────────
━━━━━━━━━━━━━━━━━━━━━━━━━━━━━━━━━━━━━━━━━━ PREPARE NOW FOR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 JESUS CHRIST By Homer Duncan
First published in the English language in 1969 by Missionary Crusader, Lubbock, Tx, U.S.A. 1970 / Korean by Word of Life Press, Seoul, Korea, All rights reserved. Translated and published by permission. Printed in Korea. ━━━━━━━━━━━━━━━━━━━━━━━━━━━━━━━━━━━━━━━━━━
【 & 제17장ː죄의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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